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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Feb 12. 2023

2월 14일 오뚝이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겠다.

처음 대면하는 사람들조차 대놓고 "어떤 운동 하세요"하고 물어 올 만큼 나의 겉모습은 건강하다.

하지만 탄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 안은... 내 안은 오뚝이다.

넘어지면 달래어 일으켜놓고, 또 넘어지면 또 달래어 일으켜 놓아야 하는 오뚝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달래는 데는 맛있는 게 최고다.

초콜릿 하나를 까서 입 안에 넣고 둥글둥글 굴려 녹여준다. 그러면 초콜릿은 달콤한 그리고 따뜻한 맛이 된다.

난 이 따뜻한 맛을 좋아하는 초콜릿 중독자다. ^^

싸늘해진 마음을 데우기엔 이만한 치유제가 없다. 그리고 따뜻한 응원이든 한 줄의 글도.





국민(초등) 학교 시절 '오래 달리기'를 했었다.

비록 시골학교였지만 1200m 달리기 대표 선수였다.

당시 별명이 소머즈였다. 600만 달러 사나이의 여성 버전인 지치지 않는 여전사 '소머즈'였다.

그 시절 난, 총성이 울리면 단거리를 달리는 속도로 시작점에서 테이프를 끊는 끝지점까지 거의 같은 속도로 달렸다. 보통의 경우 단거리를 잘하는 친구들이 장거리도 잘하는 편인데, 나는 특이하게도 단거리 속도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형편이 없었다. 하지만 나만의 느린 단거리 속도를 1200m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소머즈처럼 지치지 않아서 그 속도를 유지한 것은 아니다.

운동장 트랙 한 바퀴는 400m 거리다.  3바퀴를 돌아야 한다.

나 또한 첫 바퀴부터 전력을 다해 달리고 나면 두 번째 바퀴에선 거칠게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풀려 달릴 수가 없다. 그래서 장거리 선수들은 100m, 200m 단거리와는 달리 전략적으로 달린다. 첫 바퀴부터 전력 질주하는 어리석은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페이스를 조절해 가며 적당히 힘을 배분하고 마지막 바퀴에 가서 스피드를 전력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고,  다르게 달렸다.

그렇다고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애초에 영리하게 계획해서~ 나만의 달리기 전략을 구사해서~ 다르게 달렸던 건 아니고, 나에게 달리기는 열심히 달리는 게 다인 그냥 달리면 되는 간단한 운동이었다.

나름의 앙큼한 계획이 있었다면 1등 해서 공책 3권을 타고 싶은 욕심이 전부였다. 욕심 덕분인지 운동회 날 탁월한 1등을 했고 그런 나를 본 체육 선생님 눈에 들어 육상부에 들어갔다.   

체육선생님이 날 육상부로 뽑긴 했지만 너무나 왜소했던 나에게 학교를 빛낼 선수가 될 재목이라는 기대나 믿음 같은 건 없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장거리 선수들이 익혀야 할 전략 같은 건 가르쳐주지 않았다.  기껏해야 양쪽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아 달리게 하고 단거리 선수들이나 하는 짧은 코너를 왕복 달리게 하는 훈련을 시킬 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나는 꾸준히 좋은 실적을 보여줬고 그제야 체육선생님은 날 가르쳐 보기로 맘먹었는지 장기리 선수들이 배우는 전략을 나에게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방법이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다른 육상선수들에 비해 다리도 짧고 키도 작아서인지 처음에 페이스를 조절하다 중간 내지 마지막 트랙에 이르러 치고 나가야 하는 방법이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난 도저히 속도를 높일 수도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도 없었다. 페이스를 조절한답시고 천천히 뛰기 시작하면 난 그 천천히 속도로 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뛰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는 속도를 올리지 못하고 꼴찌가 되어야만 했다.  


어느 정도의 신체(키)와 탄탄한 체력은 장거리 선수들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에 비해 난 운동선수를 하기에는 신체적으로 결핍자에 가까웠다. (난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키 133m, 몸무게 26kg를 넘지 못했다.)  다른 선수들과 같은 방법으로는 난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것이다.



다시 나의 방식으로 달렸다.

시작점부터 전력 질주를 해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앞서 나간다.

400m 트랙 한 바퀴를 달리고 나면 두 번째 바퀴에서는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풀려 더 뛰어낼 여력이 없다.

사실은 나 역시  다른 선수들과 다르지 않았다. 난 생체공학 인간 '소머즈'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온몸에 힘을 뺀다. 일부러 눈의 힘까지 풀어 시야까지 흐려지게 한다. 트랙의 선만 겨우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남기고 온 힘을 다 뺀다. 그리고 다리는 나와 분리되어 그냥 앞으로 움직이게만 한다.

흐린 시야 때문인지... 전력으로 달린 다리 때문인지... 그렇게 난, 내 앞에서 달리는 사람을 볼  없었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니체-




운동장에서 전력질주하던 어린아이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지금도 달리고 있다. 운동장이 아닌 내 삶의 매트릭스 위에서 달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결필자다. 중학교 이후 급속한 성장으로 신체 우월자(?)가 되었지만 삶의 한 부분에선 또 다른 결핍자가 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의 결핍을 극복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가동해야 한다.

그건 나에게 맞춤한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나의 길을 가는 것.

그 길에는 검증된 매뉴얼도 없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법도 없다. 그래서 두렵고 불안하다.

내 안의 오뚝이가 불안해하다 흔들려 쓰러졌다.

맛있는 걸 주어 달래어 일으켜 세워놓아야 한다.


따뜻한 초콜릿 한 조작으로...

그리고  따뜻한 글 한 편으로...

오늘도 으쌰으쌰 ~~~~ 힘을 내요 소머즈~~~~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에라히 케스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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