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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Dec 12. 2022

흉내

강남 갔던 제비는 호박씨를 물어오지 않는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다, 문득 작년 겨울 고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을 읽고 써 둔 글이 생각나 올려본다.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인연이겠지만 내가 유별나게 의미를 부여하는 인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과의 인연이며, 다른 하나는 책과의 인연이다.

사람도 책도 시절 인연이 있다. 때가 되지 못하면 설령 마주친다 해도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기가 다반사다.  


아들 학교 알림장을 보다 독후감 대회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학교 공지사항이라 당연지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겠거니 싶었는데 웬걸 일반 부문이 있었다. 아들은 중2다.(중학교 2학년이다.) 엄마의 지시 내지 명령이라면 일부러라도 반항을 해야 할 것 같은 나이다. 자발 적으로라면 몰라도 중2 소년에게 독후감 쓰기를 강제할 욕구는 있으나 용기는 없다. 그렇다고 수년째 책장에 꼿꼿이 서서 옆구리마저 빛바랜 버린 그 책을 또다시 스쳐가기에는 왠지 인연의 때가 온 듯하여, ‘해본다’는 용기를 아들에게서 내게로 이동시켰다. 이렇게 해서, 안 해도 될 짓을 또 벌인 것이다.

이 안 해도 될 짓이 독후감 대회에 참가를 결심한 소박한 이유라면 소박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어쩌면 도전에 도전을 얹고 산 故 정주영 회장의 남다른 삶을 밋밋한 나의 시간에서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도전을 ‘시도’라는 좀 더 무게 있는 단어와 연결시키고도 싶었지만, ‘흉내’ 내는 정도로 여기는 것이 정직한 표현 같았고, 무엇보다 대회 참가에 가벼운 마음이 들게 했다. 몰라서 그렇지 ‘흉내’는 포기도, 실패도, 시련도 없는... 꽤나 현명한 짓(?)이다.


 

흉내 1) 겨울 : 무(無)

최근 들어 새로이 ‘이쁘다’,‘대견하다’며 찬탄하는 것 중 하나가 겨울나무다. 요전까지만 해도 내게 겨울나무는 누년(累年)을 체험하고도 또다시 겨울의 매서움을 잊은 채 바람 막아줄 잎사귀 하나 없이 겨울을 항거해 서 있는 무지하고도 무모함의 상징물 같았다. 안쓰럽기도 했지만 딱히 눈여겨 볼거리도 없어 무심히 지나쳐 버리던 겨울나무에 올해는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려앉았다. 눈빛의 밝음 때문이었을까? 가지에 머물던 시선이 밑동까지 내려갔다. 가을부터 떨구어진 낙엽들이 밑동을 둘러 빼곡히 쌓여있었다. 나무는 잎을 떨어 시비로 삼는 지혜로움과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내로 겨우내 봄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국권마저 강탈당한 가난한 시대의 가난한 나라, 그것도 가난한 집안의 장남, 상상할 것도 설명할 것도 없이 가난의 쇠사슬이 빤히 그려진다. 돈이 없으니 먹을 것이 없고, 배움이 없으니 경험도 없다. 게다가 강남 갔던 제비가 호박씨 물어다 주는 동화 같은 기적도 없다.  그렇다 해서 그가 타고난 가난을 탓하거나,  요만큼 하고서 이만큼의 요행을 바란 적은 없다. 되려 부자 내지 성공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타고난다고 말했다. ‘평등하게 주어진 자본금’ 즉 ‘시간’의 존재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시간은 평등할 뿐만 아니라 활용법 또한 간단했다.  

  한 마디면 충분했으니...... “이봐, 해보기나 했어?”   

삶이 제 아무리 손 시린 겨울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해보기’를 행하는 자가 보낸 시간에는 결코 실패란 없으며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는 것이었다.   



흉내 2) 봄 : 신(信)

봄은 따순 기운만 느껴졌다 하면 새롭고 환한 것들로 재빠르게 세상을 펼쳐낸다. 싹 틔운 것이 반갑고 대견하여 인사하고 돌아서면 꽃이 피어있고, 꽃이 예뻐 “어머머~~” 하고 감탄사 연발하고 나면 어느새 어린 열매를 맺고 있다. 하지만 봄의 세상이 눈 깜짝할 사이 왔다 해서, 시쳇말로 꽃길만 걸어왔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꽃을 피우는 길목에선 꽃샘추위가 응달 녘에 숨어 있다 해코지하기도 하고 난데없이 봄 서리가 내리기도 한다. 또 이런 자연의 위협이 다인가 하면, 땅을 가르고 겨우 고개 내민 새싹을 시샘하는 것들이 나타나 한 입 거리도 안 되게 삼켜버리는 짐승스런 위협도 있다.  


그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시련 없이 단박에 성공한 적이 없다. 오죽했음 가출도 단박에 못하고 네 번째 성공을 했겠는가. 다만 그는 시련을 실패로 연결시키지 않는, 자신만의 해석을 지닌 무한 신념, 무한 긍정의 소유한 자일뿐이었다.

그는 말한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체득한 것이 있다면, 인생이란 시련의 연속이며 연속되는 시련과 싸우면서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이라고’. 

시련은 반갑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을 곤혹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는 시련 앞에 당황하거나 어쩔 줄 몰라하지 않았다. ‘반드시 된다’는 확신과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을 믿었고, 그런 믿음은 '더 하려야 더 할 게 없는' 최선 다해 살아 낸 성실로 보여주었다.  


 

흉내 3) 여름 : 더(成長)

그는 1935년 시무식에서 “올해는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소에도 그는 "나는 밥풀 한 알만 한 생각이 내 마음속에 씨앗으로 자리 잡으면 커다란 일거리로 확대시키는 것이 나의 특기다."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으니, 그가 일을 꾸미는 것이 시무식 참석자들에게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걸어온 시대는 일제로부터의 억압과 군부 정치로부터의 탄압이 끊이지 않는, 다시 말해 내남없이 도전보다는 순응이 옳다고 여겨지는 시대였다. 거들어 주는 사람은 고사하고 누구는 대놓고 무모하다 비꼬고, 누구는 뜯어말리기까지 하는 시선 속에서 세 곱절의 용기는 더 필요했을 것임이 짐작이 가고도 남은 직한데. 안정된 삶의 역방향과도 같은 길을, 도전과 발전으로 쉼 없이 계획하고 키워갔다.



 흉내 4) 가을 : 길(道)

가을, 계절 끝 길에 서면 누구나 추수를 한다. 그의 추수에는 분주했던 도전의 수만큼이나 호칭의 가짓수도 푸짐하다. 언뜻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 꼽아도 현대그룹 회장, 전국경제인 연합회장, 올림픽 유치위원장 등등 종이가 모자라 그렇지 열 손가락은 가뿐할 것 같다. 그중 내심에 품은 호칭은 ‘건설인’이었다.

건설인인 그는 댐을 쌓고 바다를 매우고 길을 닦고 도로를 만들어 그 위 자동차를 타고 달렸다. 그러나 그가 건설한 진짜배기는 현대의 본질, 본성에 있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모습이 본질인 것처럼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 또한 본질이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고 욕망하는 것 그 모두 것이 본질임을 80 여생의 산 경험이 말해준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야 하며,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아가야 한다.’고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 이러쿵 하는 소리도 있고, 저러쿵하는 소리도 있고 다양한 평가들이 있다. 하지만 서로 아귀가 맞지가 않아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하나만큼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오늘 세계 속 현대를 있게 한 현대의 정신, 현대의 가치를 만든 사람은 분명 그, 정주영이다.  

손에 잡히는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제 아무리 부서지지 않는 ‘토르의 망치’라 하더라도 자연과 시간 앞에선 무너지고 퇴화된다. 하지만 한 번 만들어진 고귀한 가치는 해를 넘고, 시대를 넘어서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길이 되어준다. 겨울, 봄, 여름, 가을 또다시 겨울이 온다 해도......


 

끝으로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 한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여럿이 그리 증언하듯 말하는 거 보면 과장이거나 포장은 아닌 듯하고 책이 주는 건실한 인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나의 책과의 인연을 다시 난, 나의 아들들과의 인연으로 연결시키는 삶을 살고자 한다. 

나를 흉내 내며 자라는 나의 아들들. 나를 보고 자란다는 바로 이 무서운 점이, 도전적인 삶을 흉내라도 내어 살고픈 나의 결코 소박하지 않은 이유이기에... 그 인연의 말을 줄여 정리해 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침한다.


시계와 시간이 다르듯 나이 듦과 늙음은 다르다. 

시계는 1초· 1분을 또박또박 가지만 시간은 빨리도 느리게도 간다. 나이는 한 해 한 살씩 보태어 가지만 늙음은 열정의 죽은 세포 수만큼 자국을 남긴다. 

나는 강남 갔던 제비가 호박씨 물어다 주길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움직였다. 소 한 마리 훔쳐 가출한 나는 막노동에서 엿 공장의 고정된 직업으로, 엿 공장에서 돈이 모이는 쌀가게로 움직였다.  

나의 소박한 한 걸음의 시작이 결국 500마리의 소 떼를 이끈 동족의 길을 열었고 이 나라의 비약적 발전에 푸짐한 몫을 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꿩이 없으면 닭으로, 나는 잔디가 없으면 보리 싹으로 충분했다. 

너희들은, 미지의 인생길 앞에서 용기가 없다면 단지 날 흉내 낸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딛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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