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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클레어 Sep 02. 2024

내 친구, 검은 개

안녕! 검은 개

“평생을 따라다니는 검은 개(black dog)”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던 처칠은 우울증을 검은 개라고 말했다.


난 우울증을 겪기 전까지 우울증의 증상을 잘 몰랐다.

인간이라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있으니,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오늘 우울해” , “나 오늘 멜랑꼴리해”

우울함의 정의를 기분이 좋지 않거나, 슬픈데 눈물 나는 정도는 아닌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나는 “우울하다”는 말을 수없이 가볍게 내뱉었다.


엄마가 되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 생명체를 보호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감정이나 상태는 후순위로 밀렸고, 아기의 상태와 감정은 우선이었다.


난 성인이고 아이까지 낳은 어른이므로 자신을 돌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약한 존재인 아기를 보호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있었다.

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도 산후우울증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이 감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가끔 뉴스에서 산후우울증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엄마의 기사만 읽었지, 잘 몰랐다.

고통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생각했다.

금방 지나가는 그런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우울이라는 가랑비에 조금씩 젖고 있었는데, 감정의 성숙도가 낮아서 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의 시작은 출산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물론 오래전부터 숨어있던 캐캐묵은 감정이 튀어나온 것일 수 있다.


미성숙한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건 호르몬의 농간이고, 여자들이 겪는 PMS처럼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지독한 PMS를 겪고 있으니 이와 비슷할 거라고, 그 농간에 조금 놀아나다 보면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너무 모든 것을 쉽게 봤다.

특히 우울이란 감정을 너무 쉽게 봤다.


바보같이 우울증을 겪고 나서야, 이 감정이 얼마나 무섭고 버티기 힘든지 깨달았다.

겉에 보이는 상처와 다르게 뇌와 호르몬에 남은 상처는 없어지지 않았다.  

우울은 상처딱지처럼 가슴과 뇌에 딱 붙어있다.

아물듯 아물어지지 않는 딱지를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건, 꽤나 괴로운 일이다.


산후우울증으로 매일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고  눈물이 흐르면 이해라도 하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괴로웠다.

슬프지 않은데 눈물을 흘리는… 괴상한 날의 연속이었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 뿐이지만, 슬픈 일도 없었고 남들이 보면 오히려 평온한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갑자기 아기에게 미안하고, 부모님께 잘못했던 일이 떠오르며 뚝뚝 흐르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나 미친 거 아니야?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멈출 수 없었다.

아마 그동안 내가 겪은 감정과 다른 감정이라 생소해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슬픔이 내 몸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 가슴통증이 느꼈다.

그렇게 나는 검은 개와 친구가 되었다.

‘안녕! 검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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