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뱀파이어: 다른 사람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빨아먹고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조어.
유난히 또래 친구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아이.
유독 눈치를 보는 아이,
마음이 여리여리 여린 남자아이.
이런 아이는 또래 친구들한테 쉽게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내 아들이 그렇다.
오늘도 아이는 학교에 가면서 한 걱정을 늘어놓는다.
“앞집에 사는 00이가 나를 또 괴롭히면 어쩌지?”
“같은 반 00이가 괴롭히면 어쩌지?”
아이가 이런 걱정을 늘어놓을 때면 나는 두 팔을 휘저어 가며 흥분해서 외친다.
“절대 가만있으면 안 되지, 너를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해, 그래야 널 건드리지 않아, 오늘부터 꼭 이렇게 해보기야!”
가만히 되짚어보니 아이가 하는 걱정들이 내가 회사 다닐 때 했던 걱정들과 비슷하다.
일명 ‘센 사람’들을 유독 힘들어하던 나......
그들에게 나의 에너지를 잔뜩 빼앗기고 나서 탈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생기 없는 얼굴과 몸짓으로 나의 소중한 아이들을 대했었다.
내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고 허구한 날 몸은 아파왔다.
주말엔 내내 앓아누워있어야만 했다.
며칠 전, 내가 회사에서 근무하는 내내 시달리던 역대급 에너지 뱀파이어와 오래간만에 전화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그 여자에게 울먹이며 말하는 모습을, 그 목소리를... 나의 아들은 그대로, 문 밖에서 듣고 있었다.
티는 안 내려했지만 아이는, 엄마의 그런 모습과 오고 갔던 말들에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런 아이의 표정을 보자, 상종 못할 나쁜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마지막까지 잘해보자고 말했던, 그 나쁜 여자에게 제대로 화 한번 내지 못한 나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나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려왔다.
그날 밤,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 낮에 통화한 그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통화로는 쏟아붓지 못한 저주의 말들을 글로 퍼붓고 난 뒤에야 몸부림치며 간신히 잠이 들 수 있었다.
아이가 또래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항상 걱정이 많던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왔을까?
과연 아이 앞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신랑을 제외한, 날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나는 나의 목소리를 내고 살아왔던가?
내 자신에게 몇 번을 되물었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푹 떨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마찰이 두려워 내 목소리도 내지 못한체,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하면서, 언제나 그런식으로 곤란한 상황을 피해만 왔으면서, 나의 아들과 딸에겐 그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충고했다... ...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수많은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철저히 ‘홀로’ 그 상황에 맞서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나 부모가, 배우자가, 옆에서 우리를 거들어 줄 순 없다.
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그들의 방식’대로 각자 꾸려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부모인 내가 혼자 맞서 싸우는 법을 보여주고 씩씩하게 걸어 나가야 할 용기와 의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이건 부모와 자식이 함께 노력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짐해 본다.
이 시간 이후로는 나에게 어떤 거대한 존재가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말이다.
더이상 혼자 아파하고 끙끙거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틀리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내가 혼자 당당하게 나의 길을 걸어간다면, 이런 내 뒷모습을 보고 자란 나의 아이들에게 아무리 힘든 역경이 닥친다 해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두 팔을 앞 뒤로 흔들며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여유와 패기로 힘든일을 극복해가며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