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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피티 Oct 12. 2022

부장님, 세렌디피티님에게 전화 왔습니다.

그의 전화기 속 내 이름은 '세렌디피티'

serendipity

미국∙영국 [ ˌserənˈdɪpəti ]

미국식 [ ˌserənˈdɪpəti ]

뜻밖의 재미[기쁨]


그이의 핸드폰 연락처에 내 이름을 '세렌디피티'라고 저장해 놓은지는 5-6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영단어로 나의 존재를 표시해 놓은 게 의아했던지 몇 번이고 남편은 내게 그 뜻을 물어봤다. 그때마다, "뭐, 복권 같은 거지. 뜻밖의 행운? 그런 뜻 이래."

나와의 대화에 쉽사리 열정을 내어놓는 편이 아닌 그는, "아 그래?"라고 대답한 뒤 그 뒤로도 여러 번 그 단어의 을 물어보곤 했다.

"아까 나 회사에 있을 때 너한테 전화가 왔었나 봐, 내 옆에 있던 직원이, 부장님~세렌디피티 님에게 전화가 왔는데요?라고 하더라."

순간 빵 터졌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단어인 '세렌디피티님'이라고 누군가에게 불린다니....

그의 전화기에 세렌디피티라고 입력한 이유가 있다.

결혼 후 가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여보,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해? 아니면 좋아?"

나의 열정적으로 빨간 질문 공세에, 차분하다 못해 무심한 푸른 대답,

그는 아주 좋다고도 하지 않았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애매한 대답을 굴착기로 깊게 파고들어 갈지 말지의 기로에 섰던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자존심이 몹시 상한 거 같기도 하면서, 별 의미 없이 말하는 그의 성격을 알면서 뭘 그리 화가 날게 있나 싶기도 해서였다.

그 무렵 묘한 오기가 발동했다.

'나와 결혼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해 주겠어~'

즐겨보던 드라마 OST 중 '세렌디피티'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고 영어 사전을 찾아보고 나서 이 단어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나는, 신랑의 핸드폰을 들고 나의 이름을 이 단어로 바꿔버렸다.

굳이 풀어서 말하자면 나와 결혼한 건, (알고 보니) 뜻밖의(?)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해주고 싶어~였다.

평소에 청국장 담는 뚝배기처럼 무뚝뚝한 그가 한 번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 아녔으면 난 지금쯤 거지였을꺼야, 네가 그때 집사자고 말 안 했으면 난 안 샀을 거고 지금쯤 아무것도 없었겠지."

이 말을 들은 나는 혼자 씨~익 웃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것봐~내가 세렌디피티라니까~'


이제 뜻밖의 행운(?)은 되어봤으니 다음 나의 이름은 뭘로 바꾸지?


ㄷㄷㄾㅍㅌㅌㄴㅇ자ser·en·dip·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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