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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피티 Sep 27. 2022

자꾸 사랑을 계산하려 하나요?

설거지와 모닝커피

'내가 설거지를 했으니 드립 커피 내리는 건 신랑한테 해달라고 해야지.'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 했던 생각이다. 어제 잠을 설쳐 멍하고 찌뿌둥하고 피곤한데 설거지를 내가 했으니 모닝커피라도 신랑이 만들어야 뭔가 계산이 맞는 것 같단 판단이 들었다.

"여보, 커피는 당신이 좀 만들어줘요, 내가 바빠서 커피 내리는 건 못하겠네."

어라? 신랑이 커피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아 놓은 것 까지는 하더니 그새 또 핸드폰을 붙들고 소파에 앉아 있다. 온라인 수업을 위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니 수업에 관련된 중요한 작업을 하면 그냥 내가 해야겠다 생각하고  슬쩍 뭐하나 봤더니 '주식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화가 난다. 뭔가 스멀스멀 뜨거운 것이 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익숙한 느낌...

"당신 바빠?"

"아니."

"지금 주식 보고 있는 거야? 커피 좀 만들어 달라니까."

어디 한 번 더 기다려 보자.

'어, 계속 소파에 앉아만 있네.'

곧 있으면 온라인 수업이 시작할 시간인데 남편은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안 한다.

성질 급한 놈이 항상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나는 입이 댓 발 나와서 신랑이 갈아만 놓은 원두가루를 커피 머신에 툭 털어 넣고 물도 다시 채워 놓았다.

' 쳇, 커피 하나 내리는 게 그렇게 뭉기적 거릴 일이야?'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던 마그마의 잔재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살짝 새어 나온다.

"아 커피는 좀 당신이 내려 달라고 말했잖아!!"

이렇게 쏘아붙이고 그래도 분이 덜 삭아 나는 안방에 쌩하니 들어오면서 일부러 문도 꽝 소리가 나게 닫았다.

'예상보다 세게 닫힌 문... 할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

언제나 그렇듯 먼저 화낸 놈이 먼저 후회하기 마련.

나에게 가장 소중한 그에게, 내가 설거지도 하고 커피도 기분 좋게 내려주면 뭐 좀 어떤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커피가 다 내려지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 사랑을 소담지게 담아 그에게 가져다줘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이, 그가 다소 멋쩍은 얼굴로 내가 있던 안방 방문을 열고 들어 온다.

내가 일부러 쾅 소리를 냈으니 그도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다.

그동안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던 나는 괜히 멋쩍어서 엉뚱한 얘기를 꺼냈고, 그 참에 신랑에게 씩 웃으며 미소를 보였다.

그러고는 커피머신 쪽으로 가서 갓 완성된 따끈한 커피에 '사랑'과 '약간의 후회'를 담아 살포시 그에게 건넨다.


나는 오늘도 칼로 물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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