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우

by 손성유

유치를 논하자면 끝이 없지만 사춘기가 한창이던 중학생 때의 나는 유치하기가 그지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내가 아닌 다른 이와 노는 것을 목격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질투와 분노가 몰아쳐 그날 내내 친구에게 틱틱거리곤 하교할 때가 되면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은 채 심상찮은 표정으로 지금 화가 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티내며 걷다가 헤어질 때쯤 이런 말을 내뱉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 솔직히 조금 서운했어.”

이런 내가 친구를 사귀는 기준은 다름 아닌 ‘미’였다. 나는 예쁜 것을 좋아했다. 책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예쁜 인형, 예쁜 핏의 교복, 예쁜 케이스의 틴트. 예쁜 것을 들고 다님으로써 생기는 묘한 우월감. 그 얄팍하지만 날 것인 감정에 나는 중독되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수집욕과도 비슷했는데, 그러한 욕심이 나의 교우관계에까지 적용되어 나는 예쁜 아이들에게만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던 것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나는 반에서 가장 예쁜 아이를 찍은 뒤 그 아이와 친해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중에서도 중학교 2학년 때 친해진 그 아이는 내가 사귄 친구들 중 가장 예쁜 아이였으며, 전교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지우였다.

지우의 소문은 단순히 ‘예쁘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우에게는 예쁘다는 것 외에도 여러 개의 소문이 따라다녔는데, 그것은 소위 ‘잘나간다는’ 아이들이라면 공통적으로 지녀야할 멍에와도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러한 지우의 소문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 그런 것들 쯤은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을 것만 같은 표정과 적당히 나를 낮추며 상대방을 올려주는 칭찬,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나와 지우, 우리를 격리시키는 은근하고 오붓한 배타성까지. 늘 그렇듯이 나는 지우와 성공적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예쁜 아이들은 항상 그들만의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지우와 과거 인연이 있던 나의 또 다른 예쁜 친구들은 나를 보며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희영아, 신지우랑 친하게 지낼 만해?”

“응. 왜?”

“와, 역시 희영이 너는 애가 참 넓구나.”

그것은 칭찬이 아닌 은근한 비꼼을 곁들인 경고였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못 알아들은 척 순진무구한 눈빛을 꾸며내며 “언제 다 같이 놀자.”하고 대꾸하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지우를 따라다니는 두 번째 소문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첫 번째 소문은 당연히 예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우는 예쁘다기보다는 ‘못된’ 애였다. 지우는 권력형 인간이었다. 반 아이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 권력을 이용하여 한 아이를 따돌리는 것도 좋아했고, 담임 선생님에게 반기를 드는 것 역시 좋아했다. 그리고 그러한 지우의 성향은 지우의 바로 옆에 딱 붙어있는 나에게도 나쁠 것이 없었기에 나 역시 그러한 지우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며 지내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나는 그러한 지우의 모습을 좋아했다.

누군가 나와 지우의 관계를 보았다면, 대놓고 지우가 갑인 것이 분명한 관계라고들 말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하지 않지는 않는다. 어쩌면 나는 그러한 관계, 그러니까 내가 을인 관계에서 더욱 안정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지우가 나를 조금 더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을 때 즈음 나는 우리의 관계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지우와 나는 다른 반이 되었다. 그때쯤 나는 점점 우리의 갑을관계가 바뀌어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매 쉬는 시간 지우의 반으로 찾아가던 나의 발걸음은 하루에 한번, 혹은 하루걸러 한번 가기 일쑤였고, 매일 함께하던 하굣길도 이제는 새로 사귄 친구로 대체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급식은 항상 함께 먹었는데, 매일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내가 지우의 반으로 찾아가 지우를 데리고 함께 급식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내가 점점 지우에게 소홀해지는 것에 대해 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우는 자존심이 셌다. 그것을 대놓고 입 밖으로 꺼냄으로써 그것을 인정하고 말아야 하는 사실을 지우는 견디지 못하였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았고, 그랬기에 나는 마음을 놓은 채 더욱 대놓고 지우와의 관계에 소홀해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비겁한 아이였다. 내가 비겁한 행동을 하여도 지우가 나에게 그 책임을 묻지 못할 것이며,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지우의 소문 덕분에 내가 관계를 포기해도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으리란 것 역시 인지했을 정도로 나는 비겁했다.

지우가 울음을 터트렸던 것은 내가 그 모든 것을 인지한 즈음이었다. 그날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지우에게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고 같은 반 친구와 매점에 가서 라면과 삼각 김밥을 먹었다. 결단코 지우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매점에서 점심을 먹은 뒤 친구와 운동장을 산책하고 예비종이 울리기 5분쯤 전 교실로 돌아왔을 때, 반에는 지우가 울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곧장 지우의 반으로 달려갔는데, 그것은 지우가 걱정돼서도 죄책감 때문도 아닌 그저 하나의 쇼맨십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지우의 모습은 마치 마녀에 의해 부모를 잃은 공주처럼 아름다웠다.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지우의 자리로 가 왜 우느냐고 물어보는 대신 사탕을 건네었다.

“이거 먹어. 너 점심 안 먹은 것 같은데 이것밖에 줄 게 없네.”

“….”

사탕을 본 지우의 눈에서는 더욱 더 빠르게 눈물이 퐁퐁 솟았고, 주위에는 티는 내지 않지만 힐끔힐끔 나와 지우를 구경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빨리 종이 치기를 기다리며 몇 분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지우의 앞에 서있었고, 드디어 종이 쳤을 때 다음 쉬는 시간에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나는 지우의 반을 빠져나갔다.

그 사건 뒤 나는 다시 예전처럼 매일 지우와 함께 점심을 먹었고, 지우의 세 번째 소문 역시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지우의 세 번째 소문은 다름 아닌 ‘거짓말’이었다. 그러니까, 지우의 소문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아니라, 지우가 습관적인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지우는 의뭉스러운 말을 자주 내뱉었다. 한 아이돌의 팬싸인회에 갔더니 그 아이돌이 자기에게 전화번호를 줬다느니, 내가 보는 웹툰을 보더니 사실 자신의 언니가 이 웹툰의 작가라느니 하는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조금 영악한 데가 있어도 나는 겨우 중학생으로 주위 사람의 거짓말에 대한 면역이 있지도 않았고, 아이돌도 반할 만큼 지우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순진함도 있었으며, 내가 보는 웹툰의 작가가 남자로 밝혀졌어도 지우가 그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적당한 타인에 대한 무관심함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우가 점심을 먹으며 한 이 말은 절대로 순진하고 무관심하게 넘겨지지가 않았는데, 그것은 여객선이 침몰하여 몇 백 명이 익사하는 충격적인 사고 이후 대국민적인 애도의 기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있잖아, 나….”

“왜? 뭔데?”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응.”

“나 사실 주위에 ‘그’ 사고로 죽은 사람 있어.”

나는 이때부터 지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또 시작이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나의 반응 때문이었을까, 지우의 거짓말은 더욱 자극적으로 흘러갔다.

“안치실에 가서 시체 확인도 했어. 신원 확인이 안된다고.”

“….”

“교회 같이 다니던 오빠였는데, 시체가 퉁퉁 불어서 정말 못 알아보겠더라.”

“….”

묵묵히 밥만 먹는 나에게 다급하게 말하던 지우는 나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이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내가 그 오빠랑 얼마나 친했는데, 이렇게….”

지우는 정말로 너무나도 슬픈 것 같았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스스로의 연기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린 실력파 여배우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엉엉 우는 지우에게 휴지를 건네주며 들었던 감정은 분명 혐오감이었다. 누군가에 대해 이렇게 노골적으로 혐오감, 내지는 경멸이 드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모두 숨기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우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지우를 생각하면 모래알같이 까끌까끌한 감정이 든다. 그것은 분명 그리움은 아니다. 지우와 나는 여태까지도 1년에 한 두 번씩 만나니까. 어쩌면 그것은 나에게 남겨진 화상자국인지도 모르겠다. 고데기를 쓰다보면 그것에 아무리 익숙하여도 한번쯤 실수로 데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화상자국은 아무리 데인지 오래여도 그때만 생각하면 자연스레 화끈거리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이다.

그때 이후로 누군가 말을 하면 나는 의심부터 한다.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은 아닌지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에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지우는 나에게 화상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아무리 화상을 입어도 그것이 고데기나 다리미 탓은 아니다. 그것들을 사용한 나의 탓이지.

얼마 전 인턴십에 지원하기 위해 카페에 앉아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우연히 지우를 마주친 적이 있다.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진 글을 무표정한 얼굴로 써내려가던 나를 발견한 지우는 잠시 동안 옆 테이블에 앉은 채 새로 사귄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쉼 없이 조잘대던 지우가 잠시 목을 축인 후 전과 다름없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근데 있잖아.”

“응.”

“그때 왜 그랬어?”

“응?”

“중학교 3학년 때 말이야. 너 갑자기 나한테 조금 이상하게 굴었잖아.”

“….”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지우는 그때 나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물어왔다. 그러나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노트북에는 나의 자기소개서 파일이 띄워져 있었다. 나는 그저 지우와 노트북, 그 둘을 번갈아볼 뿐이었다.

keyword
이전 02화머릿니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