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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니소동

by 손성유

어린 시절, 그러니까 이른바 ‘컨닝 페이퍼’ 사건이 발생하기 1-2년 전 쯤 나에게는 꽤 많은 동네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학교에서는 딱히 아는 척을 하지 않았지만, 학교가 끝나는 오후 두 시가 되면 집에 책가방을 던져둔 채 놀이터로 뛰어나가 저녁을 먹기 전까지 함께 온 아파트 단지를 누비곤 했다. 그 중에서도 나와 가장 친했던 이는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던, 은서와 은채라는 이름의 쌍둥이 자매였다. 그들은 우리 단지에 살고 있진 않았지만 꽤나 자주 우리 단지의 놀이터에 나타나곤 하였고, 이내 나와 친해지게 되었다. 쌍둥이였음에도 그들에게는 위계질서가 있었다. 은채는 은서를 항상 언니라고 불렀고, 은서는 은채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인 양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기 바빴다. 그런 은서의 태도는 전염성이 있었다. 은서의 그러한 행동을 본받아 나 역시 은채를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처럼 대하곤 했으니까.

은서와 은채의 새까만 생머리와 새하얀 얼굴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로 하여금 어린 애답지 않은 나름의 청초한 분위기를 내도록 하였지만 왠지 모를 음산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는데, 가끔 그들을 보면 한여름의 납량특집 티비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의 발목을 잡고 절대로 놔주지 않는 처녀귀신이 생각나기도 하였다.

그들과는 반대로 중단발 정도의 머리 길이를 가지고 있던 나는 항상 머리를 묶고 다녔는데, 매일 아침마다 엄마는 나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주곤 했다. 엄마의 손은 여덟 살짜리 꼬마로 하여금 두피의 아픔을 느끼지 않게 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하진 않았다. 엄마의 손길은 결단코 투박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엄마는 꼼꼼함을 지향하였으므로 단 한 톨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물이 나오는 칙칙이와 빗 등을 통해 나의 모든 머리카락을 끌어 모아 빨간색, 분홍색의 딸기 머리끈이 찢어지도록 힘껏 끌어당겨 나의 머리카락을 각각 양쪽으로 결박하곤 했다. 십년은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때 엄마의 손길을 생각하면 두피가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나름 깔끔하게 묶였던 나의 머리는 학교에서는 그 품위를 유지했지만, 놀이터에서는 금세 헝클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그러니까 나와 은서와 은채는 마치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처럼 모험을 하듯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놀이터의 옆에 있던 한 풀밭을 가장 좋아하였는데, 사계절 내내 초록색이었던 그 풀밭에는 애기똥풀, 강아지풀, 세잎클로버, 그리고 가시덤불이 천지에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든 경사면을 아우르며 마음껏 어린아이 특유의 야성을 발산했는데, 우리의 온 시야를 뒤덮던 초록색이 질린다 싶으면 우리는 바로 앞의 놀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투박하게 칠이 되어있던 미끄럼틀과 철봉, 시소와 그네는 비릿한 쇠 냄새로 가득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마음껏 중력을 넘나들었으며, 일부러 모래에 발을 푹푹 빠트리기도 하였다.

가끔 그 모든 것이 지겨워지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모험하는 놀이를 하였다. 그 놀이는 우선 놀이터 바로 앞의 상가에서 불량 식품, 즉 식량을 사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아줌마, 이거 얼마에요?”

“100원.”

문방구 겸 슈퍼를 겸했던 그 곳의 주인아줌마는 동네 꼬마들이 주된 고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꼬마들이 말을 걸면 항상 뚱한 얼굴로 대답하곤 하였는데, 그것마저 우리의 기를 죽이기보다는 모험의 시작으로서 모험을 모험답게 만들어준다는 일종의 도취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모험은 매일 저녁 여섯시, 놀이터 앞의 약수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오면 항상 끝이 났다. 물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우리는 용감무쌍한 모험가에서 곧장 그저 평범한 여덟 살짜리 꼬맹이로 전락하였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급격한 신분의 변화를 했음에도 후유증이랄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변화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패기는 오히려 어린 아이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은서, 은채랑 놀았어?”

“응”

“뭐하고 놀았어?”

“시계탑까지 갔다 왔어.”
“그래? 재미있었겠네. 혹시나 걔네 집까지 가는 건 안 돼.”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는 나에게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꼬치꼬치 물어봤는데, 그 어투에는 묘한 못마땅함이 묻어있었다. 엄마는 내가 은서, 은채와 함께 노는 것을 늘 탐탁치 않아했지만 언제나 그러한 사실을 나에게나 본인에게나 숨기기 급급하였다.

동네에는 은서, 은채의 엄마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란 것이 항상 그렇듯 결코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소문이 어찌나 큰지 다른 엄마들처럼 엄마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가 있지 않은 우리 엄마의 귀에도 그러한 소문이 들어갔었다. 그러나 스스로 ‘보통’의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거의 혀끝까지 튀어나왔음에도, 그 아이들과 놀지 말라는 말만은 끝끝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이 일만은 참지 못하였는데, 가을 즈음 나의 머리에 이가 생긴 것으로, 우리 가족은 이를 두고 ‘머릿니 소동’이라고 말하곤 한다. 엄마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우리 집 욕실에서 대야와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아놓고 내 머리를 박박 감겼다. 매일 아침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던 손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자비한 손길이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엄마의 손길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두피에 퍼지는 뜨거운 온도의 물과 스멀스멀 눈으로 들어오는 샴푸, 코와 입에 가득 찬 물은 쉽게 꺾이지 않던 나의 기를 단박에 죽게 만들었다.

욕실에서의 과정이 끝난 후 엄마는 곧바로 나를 데리고 미용실에 갔는데, 놀이터 앞의 그 상가, 그러니까 내가 항상 불량식품을 사먹던 상가 안에 위치한 미용실이었다.

“아이고 애기가 머리도 잘 깎네. 떼도 안 쓰고. 왜 이렇게 짧게 깎으려고?”

미용사의 물음에 높게 쌓인 방석 두 개가 깔린 의자에 얌전히 앉은 나는 거울을 통해 엄마의 눈치만을 보았다.

“글쎄 애가 놀이터에서 맨날 같이 노는 애들한테 이를 옮아왔더라고요.”

“아이고, 정말이요? 그러면 짧게 깎아야지.”

“그러니까요.”

엄마는 확신에 차있었다. 놀이터에서 맨날 같이 노는 애들, 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아빠와 언니에게도 똑같이 내 머리에 이가 생긴 이유를 설명하였고, 엄마의 그러한 태도는 분명 전염성이 있었다. 나 역시도 나의 머리에 이가 생긴 것은 모두 은서와 은채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머리를 잘린 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엄마, 그러고 보니 저번에 같이 미끄럼틀 탈 때 나랑 은서랑 은채랑 꼭 붙어서 같이 탔어. 그때 머리가 엉겼던 것 같아.”

“그래? 그럼 그렇지. 그럼 그때 옮았나보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더욱 더 신경을 써서 나를 꾸며주었다. 노란색 블라우스에 빨강색, 갈색, 주황색이 섞인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나는 가만히 앉아 엄마의 손길을 받고 있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나의 짧은 커트머리를 양쪽으로 묶고 딸기 모양 고무줄 대신 하트가 달린 핀을 꽂아주었다. 거울을 보니 위로 솟은 양갈래 머리가 마치 도깨비처럼 뿔이 난 것만 같아 보였지만 이내 새로 산 하트 핀이 마음에 들어 나는 밝게 웃으며 학교로 나섰다.

그날 이후로 은서, 은채와 나는 조금 서먹해졌다. 요상한 머리를 한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여전히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색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다니고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난 뒤에 곧장 놀이터에 가는 대신 학교 친구들과 분식집으로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도 하였으며, 가끔 놀이터에 갈 때는 은서와 은채가 아닌 다른 친구들을 찾아 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 커다란 눈으로 한참이나 나를 좇던 그들은 이내 은서가 은채의 손을 잡고 그들의 집 쪽으로 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그것들은 모두 핑계였다. 나는 영악한 아이였다. ‘머릿니 소동’ 이후에 그들과 멀어진 것은 맞지만, 그것이 그들과 멀어지게 만든 이유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소동을 이용한 것일 뿐이었다. 나로 하여금 그들과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언젠가 우리 단지에서의 모험이 그들의 집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날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엄마의 말을 어기고 친구의 집에 간 날이었다. 그들의 집은 횡단보도 건너에 있는 빌라촌의 안쪽에 있는, 가장 윗층의 집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은, 사방이 막힌 계단에서 나는 현기증을 느꼈던 것 같다.

계단에서의 현기증,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코로 확 번진 정체모를 불쾌한 냄새, 발 디딜 틈 없이 쌓여있던 옷더미와 물건들, 그것들로부터 나오는 먼지, 그리고 그 안에서 들려오던 이상한 킥킥 소리. 은서, 은채와 똑같이 창백한 피부에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생머리를 가졌지만, 머리 색깔은 온통 회색이었던 그 아이들의 엄마.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찬 집 안에서 혼자, 바싹 말랐던 그의 딸들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뚱뚱한 거구의 몸에 딱 붙는 수영복을 입고 있던. 그리고 은서와 은채의 얼굴에서 피어나던 분노와 수치심. 이것이 내가 그때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이다.

그 뒤 그 집을 어떻게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으며 얼른 안락한 우리 단지로, 온통 초록의 풀밭으로 가득하며 나뭇잎이 무성한, 저녁 여섯시가 되면 쏴아아아- 하며 물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놀이터에서 끝없는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머릿니 소동 이후 나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랐고, 학교가 끝나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으며, 나는 우리 단지 옆 단지에 있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은서, 은채, 우리는 서로의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져갔고, 이것이 이 이야기의 엔딩이다.

영악한 아이는 필연적으로 비겁한 면이 있다. 비겁해질 수 있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겁함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란 것 역시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나의 여덟 살 생일파티 사진을 보았다. 족히 스무 명의 아이들이 우리집 거실에서 치킨과 피자, 김밥, 과자, 떡과 과일 등을 먹고 있었다. 사진의 왼쪽 구석에 그 아이들이 있었다. 하얀 피부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그리고 색깔만 다를 뿐 서로와 같은 옷. 은서는 분홍색 옷을, 은채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었다. 양갈래를 한 내 머리에는 앙증맞은 딸기 머리끈이 매달려 있지만 그 위에 놓여진 형형색색의 커다란 고깔모자에 가려 그 존재감을 잃고 있었다. 정확히 사진의 한가운데 위치한 나는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앞에 두고 소원을 빌고 있다. 나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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