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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미니스커트

by 손성유

촉각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시각, 청각, 후각으로는 감지하지 못하는 것들을 촉각은 간혹 감지해내곤 한다. 가령 아파서 펄펄 끓는 나의 이마에 신경질적으로 대어졌던 엄마의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의 감촉은 몇 시간 전 싸운 나에 대한 아직 풀리지 않은 앙금, 방금 전 저녁 설거지를 모두 마치고 이제 좀 텔레비전을 보려고 하는 타이밍에 또다시 육아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데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의 단단한 손에 박혀있는 굳은살만큼이나 굳은 태초의 연민까지, 나는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열이 올라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일곱 살에서 여덟 살 즈음 나의 허벅지를 간질이던 노랑색 미니스커트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아꼈던, 대형마트의 한 매대에서 산 A자로 펄럭이던 그 노랑색 미니스커트에 대해 생각나는 감각은 단 두 가지. 걸음을 내딛음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던, 스판이 함유된 면 특유의 시원한 부드러움과 나의 짧고 하얗던 허벅지의 스침.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 미니스커트의 앞면과 뒷면은 각각 나의 허벅지의 앞면과 뒷면을 골고루 스치어댔다. 그리고 속바지를 입지 않아 그대로 느껴지던 바람의 속삭임(사실 이것은 언니에게 물려받아 조금 헐렁했던 팬티 사이즈 덕분이기도 하다). 그것을 느끼기 위해 나는 일부러 씩씩한 장군처럼 양 발을 벌린 채 서 있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러한 촉각들을 통해 무언가를 감지해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그저 걸을 때마다 느껴지던 미니스커트가 나의 허벅지를 스치는 감촉이 좋았고, 나의 온몸으로 바람이 구석구석 스며드는 그 감촉을 느끼는 것이 나는 좋았을 뿐이다.

그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나는 항상 엉덩이를 씰룩대며 걸었는데, 텔레비전에서 본 모델들은 모두 그렇게 걸어 다녔기 때문이다. 어렸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섹시’한 걸음걸이라는 것을 알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나의 모습은 어린 내가 봤을 때 꽤나 ‘섹시’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복을 입은 나, 격자무늬 스웨터를 입은 나, 초록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나. 온통 나로 가득한 나의 세계에서는 말이다. 나는 나의 ‘섹시함’을 극대화시키고 싶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꽤나 조숙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러한 나의 걸음걸이의 의도성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무도 “너 왜 그렇게 걸어?”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걸음걸이의 특이점은 전혀 캐치하지 못한 채 그저 자연스럽게 나의 ‘섹시함’만이 가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어필을 하고자 하는 대상은 정해져있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과 있을 때도 엉덩이를 씰룩이며 걸었고, 가족과 있을 때도, 심지어 혼자 걸어 다닐 때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면 항상 엉덩이를 씰룩대며 걸었다. 그러니까 대상을 정해 어필을 할 만큼 조숙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것이 본능적이고도 보편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내가 뒤에서 걸었을 때이다. 그러니까 미니스커트가 작아져 더 이상 그것을 입지 않았으며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지도 않았던 열 살 무렵, 커다란 상록수들로 가득한 숲속을 앞질러가는 내 친구의 동생을 뒤에서 바라보았을 때이다. 부자연스럽게 씰룩거리는 엉덩이를 보며 나는 아주 잠깐, 일부러 “너 왜 그렇게 걸어?”하고 그 아이를 골리어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언니로서의 위엄과 자애를 갖추자며 스스로를 제어한 뒤 그 아이의 엉덩이에서 가까스로 시선을 떼어냈다.

지금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엉덩이를 씰룩이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 온통 초록인 풍경, 샌들을 신은 발을 간질이는 연약한 풀들, 손을 뻗으면 느껴지는 두툼한 갈색깔 나무껍질. 그 단단함과 바스라짐. 그리고 저 위에,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들의 생명력. 뒤에서 그것들을 조망하는 한 아이. 이것들이 모두 합쳐져 나의 허벅지를 간질이고, 또 나의 온 몸으로 바람이 속살댄다.

1~2년이 지나자 나의 노란색 미니스커트는 나에게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금세 그 스커트를 잊어버렸고, 언젠가 한번 엄마에게 그 미니스커트에 대해 묻자 엄마는 “작아져서 버렸지. 희영이 너 어차피 그거 찾지도 않았잖아.”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 퇴근길의 지하철 안, 속에는 속바지를 입은 채 몸에 딱 붙는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지하철 의자에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있는 나는, 문득 그 때 그 스커트가 나의 허벅지를 스치어대던 방식, 바람이 자유롭게 나를 드나들던 감촉,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엉덩이를 씰룩이던 그 움직임을 감각한다.

그곳에는 아직도 상록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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