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와 불안은 어른들이 보았을 때 그다지 매력적인 한 쌍이 아니다. 그리고 그 불안이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어른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었기에 내가 처음 나의 세상, 그러니까 엄마로부터 이 모든 것들을 분명한 의도와 함께 감춘 것은 바로 나의 불안감이었다.
그 불안감은 다름 아닌 민들레 꽃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시 따위는 전혀 몰랐던 그 시절, 개나리와 진달래가 촌스러운 선명함으로 세상을 물들일 예고를 할 때쯤 일곱 살의 나는 매일같이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 우리 동네를 뛰어다녔다. 우선 밖을 나가면 그곳에는 나처럼 드디어 긴 겨울이 사라진 지금 집안에만 있기에는 좀이 쑤셔 못 견뎌하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고, 우리는 모두 엄마들이 아직은 춥다며 입혀준 내복을 안에 입고 있었다. 우리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있던 넓은 풀밭을 뛰어다녔는데, 깊고 하얀 눈으로 덮여있던 겨울과 달리 온통 초록이던 풀밭은 눈부신 햇빛이 내리쬐어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위를 우리는 술래잡기 때문인지, 얼음땡 때문인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놀이를 위해 계속해서 뛰어다녔고, 그때의 그 가벼움을 지금은 아무리 살을 빼도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항상 나를 절망에 빠지게 한다.
풀밭에는 민들레 꽃씨가 많았다. 노란 민들레일 때는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던 것들이 흰 꽃씨일 때는 희한하게 시선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풀밭을 누비며 뛰어다니다가도 하얀 솜털이 부숭부숭한 민들레 꽃씨를 발견하면 곧장 몰려가 초록 줄기를 잡아뜯어 손에 쥔 채 동시에 후후 불어댔다. 지금 와서 조망해보면 그때의 그 광경은 천진난만한 낭만으로 가득 차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풀밭에서 우리는 분명 영악하기도 했고, 조금은 폭력적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가장 많은 민들레 꽃씨를 날리기 위해 우리는 여념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은근한 경쟁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민들레 꽃씨의 씨를 말릴 기세로 눈에 불을 켜고 꽃씨를 찾았다.
후- 크게 바람을 불기 위해선, 하- 크게 숨을 들이쉬어야 한다. 어린 아이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나는 민들레 꽃씨 뭉텅이를 손에 쥐고,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릴 기세로 바람을 불기를 반복했다. 양볼에 만들어진 볼풍선은 의기양양함이라는 공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미숙한 이들에게 사고란, 삶에 대한 만족감으로 우쭐할 때 가장 쉽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가령 자전거를 배울 때면 가장 자주 엎어지는 순간은 늘, “엄마 아빠, 나 이제 잘 타는데?”라는 말을 내뱉은 바로 다음이다. 여기에서도 물론 인생의 대전제, 예외는 있다가 적용된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아이였고, 인생의 많은 예외적인 상황들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한창 민들레 꽃씨 날리기에 정신없을 그때, 불현듯 숨을 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줄기에 붙어있는 모든 꽃씨를 한 번에 날릴 수 있을 바람을 만들기 위해 나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자그마한 나의 폐가 일렁일 정도로 큰 숨을 들이쉬었다. 주변의 공기와 함께 내 혀로, 성대로, 폐로 저 멀리까지 불어 날리고자 했던 하얀 꽃씨들이 들어왔고, 곧장 기침이 쏟아졌다. 방금 전 커다란 숨을 들이쉬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폐는 들썩였고, 목에서는 아스팔트에 넘어졌을 때 생기는 상처에 붙은 모래의 맛이 났다. 말라버린 혀와 입 안에는 깃털 같은 꽃씨들이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그 요상한 감각은 나를 공황에 빠지게 했으며, 어느덧 붉어진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 몇 십 초의 기침–패닉은 이후 나의 삶에 영영 흔적을 남겼지만, 그때의 나는 기침이 조금 잦아들 때쯤, 꽃씨 날리기를 멈추고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시금 기침이 나오려고 했지만 왠지 모를 의지로 나는 기어코 그것들을 참아냈고,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로부터 등을 돌린 채 아무 일 없었다는 양 다시금 민들레 꽃씨를 찾는 척 했다.
쏟아질 듯한 기침을 참느라 다시금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곧장 우울해졌고, 모든 것이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노란 민들레와 하얀 꽃씨가 삼삼오오 모여있는 이 빛나는 초록 언덕이 원망스러웠고, 오렌지색으로 물들어가는 햇살도, 그리고 나를 둘러싼 지금 이 세상의 존재감도 원망스러웠다.
그 원망 속에서 나는 내가 괜찮길 바랐다. 생경한 울렁임은 무지한 호수를 불안으로 소용돌이치게 한다. 나는 나의 폐를 타고 들어온 이 민들레 꽃씨들이 나를 큰 병에 걸리게 할까봐 불안했고, 나에게만 오롯이 남겨진 그 감정이 원망스러웠으며, 반짝이던 공중을 휘젓고 다니던 꽃씨가 바닥에 가라앉듯 그것들은 곧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그 모든 것들을 결코 티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내 민들레 꽃씨를 찾는 것이 지겨워져 불량식품을 사먹기 위해 상가로 향했고, 그 후에는 놀이터에서 흙을 파내 수로를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불안에 휩싸인 채로, 그러나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한참을 아이들과 놀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모두가 집에 갈 때까지 놀이터에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집에 가는 길은 깜깜했고, 저 앞에는 노란 형광등이 켜진 우리집이 보였다. 그 길을 곧장 달려가 엄마에게 한참을 안겨있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는 곧장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나를 내려다볼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들어와버린 민들레 꽃씨 때문에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우리집을 올려다보다, 이내 아파트 현관에 들어가 깜깜한 계단을 올랐다.
딸깍- 센서등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