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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흔

by 손성유

내가 자주 놀던, 머무르던, 그리고 지나던 풀밭이 있었다. 사계절 내내 내리쬐는 햇빛에 짧은 모서리가 하얗게 반짝이던 풀들로 가득찬 그 풀밭엔 애기똥풀도, 민들레도, 꽃마리도, 이름 모를 푸른색 들꽃도 눈에 띄었다. 집에서 놀이터를 가기 위해선 항상 그 풀밭을 지나야만 했는데, 바로 옆에 시멘트로 된 투박한 길이 있었지만, 나를 비롯한 동네 꼬마들은 항상 무리지어 그 풀밭을 가로질러 놀이터에 가곤 했다.

풀밭과 놀이터는 검정색 울타리로 구분지어 있었다. 지금 와서 그 광경을 생각해보면 풀밭의 초록과 놀이터 모래의 누렁, 그 경계가 참으로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 나의 허리 정도 높이로 쳐져있던 그 울타리는 까만색 페인트로 덧칠한 쇠로 만들어져있었다. 그래서 놀이터를 가기 위해 그 울타리를 넘고 나면 그것을 만졌던 손에는 항상 희미한 쇠냄새가 베이곤 했고, 가끔은 손바닥에 정체모를 검정 자국이 남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 쯤은 놀이터에서 흙을 파고 놀거나,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땀을 흘리거나, 놀이터 옆의 약수터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하면 금방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내가 신경 썼던 것은 그저, 홀로 놀이터에서 함께 놀기로 한 친구들을 기다릴 때의 그 눈부신 적막함, 주머니에 들어있던 동전들이 불안하게 짤랑거리는 소리, 그리고 신나게 놀다보면 스멀스멀 운동화에 들어와있던 까끌한 모래의 감촉. 그 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그 검정의 비릿한 냄새가 나는 울타리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단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혼자서는 결코 그 울타리를 넘지 않았다. 눈부신 풀밭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그것들을 짓뭉개고 향유하고 스치다가도, 놀이터에 도착하기 한 발짝 전, 그러니까 그 까만 울타리 앞에서는 늘 얌전하게 바로 옆의 시멘트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심조심 시멘트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와 놀이터에 도착하곤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울타리를 넘는 것이 싫었다. 겨우겨우 짧은 다리를 넘기고 반대쪽 다리까지 들어 올릴 때의 그 버거움, 내가 좋아하는 치마를 입고 다리를 올릴 때마다의 은근한 불쾌감, 특히나 울타리를 넘기 직전 양발 모두 땅에서 떼어졌던 그 찰나의 순간 두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던 차갑고도 딱딱한 촉감은 언제 나를 침투할지 몰랐고, 그 사실은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있을 때면 그런 것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그저 쏜살같이 풀밭을 지나 울타리를 향해 달릴 뿐이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가뿐히 넘어버리면, 또다시 놀이터 위를 달리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면 모래가 신발을 비집고 들어왔다.

우리는 언제나 모래를 팠다. 흩날리는 하얀빛 모래를 파다보면 축축한 갈색 흙이 나왔고, 작은 손에 쥐면 항상 손 틈새로 흘러내리던 모래와는 다르게 그 깊은 곳에서 수분을 머금은 흙은 주무를 수도 우리의 손으로 덩어리를 만들 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손자국을 남길 수도 있었으며, 그 굵은 입자 하나하나를 느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놀이터의 군데군데 구덩이를 파놨고, 가끔 무신경하게 그 위를 걷던 어른들이나, 너무나도 신난 나머지 앞만 본 채 달리던 아이들은 우리가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넘어지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우리는 얼른 뒤를 돌아 모르는 척을 했고, 그들이 툭툭 털고 놀이터를 지나갈 때까지 한참이나 서로의 눈을 보며 숨죽여 킥킥거렸다. 물론 우리 역시 다른 이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그리고 가끔은 우리가 스스로 파놓은 것들에 의해 걸려 넘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곳에는 항상 개미가 있었다. 개미들은 언제나 불안하게 모래 위를 이리저리 배회했고, 그들에게 방향이라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아보였다. 우리 중에는 그런 개미들을 맨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사이에서 일종의 용감하고 영웅적인 행위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개미를 손에 들어 올린 뒤 입으로 후 불어버리기도, 혹은 그것을 들어 올린 두 손가락 그대로 그것을 짓이겨버리기도 하였다. 나는 그저 혼비백산으로 움직이는 개미들을 보면 운동화를 신은 작은 발을 수직으로 휘두른 후, 뒤집힌 채 버둥거리는 모습을 관찰할 뿐이었다. 가끔 하얀 모래 위를 걷던 개미들은 우리가 파놓은 그 검은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그 위에 개미가 바로 전 밟은 흰 모래를 뿌리곤 했다.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 지루해진 우리는, 가끔 울타리를 넘어 풀밭으로 달려가기도 하였다. 애기똥풀을 꺾으면 노란 즙이 나왔고,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이름 모를 들꽃을 꺾어 자신이 편애하는 친구들에게만 꽃팔찌나 반지를 만들어주곤 했다. 그러면 그것들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스스로 꽃을 꺾어 자신의 머리에 꽂는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풀밭으로 달려갔고, 나는 언젠가 큰이모가 사준, 자그마한 체리들이 수놓인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이들은 당연한 듯이 잽싸게 울타리를 넘어 이미 초록 풀밭 속에 있었고, 나는 그곳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덧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미 울타리를 넘은 뒤였다. 나는 초조해져 얼른 달려가 그 검정의 쇠 위에 다리를 올렸다. 남은 반대쪽 다리에도 힘을 준 순간, 그러니까 두 다리가 모두 허공에 떠있던 그 찰나의 순간 다리 사이의 무언가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날 불안하게 했던 그 막연한 느낌이 드디어 실물감 있는 고통이 되어 마침내 내 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불안함은 고통으로, 다리 사이에 느껴지던 검정의 차가움은 검붉은 뜨뜻함으로 변모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됐단 것을 직감했고, 나의 가운데서 느껴지던 쓰라림과 따끔함, 불편함은 점점 커져갔다. 마치 누군가 나의 그곳에 모래를 뿌려놓은 것만 같았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할 순 없었다. 나의 거기가 찢어진 것 같다고. 지금 나는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너무나도 고통스럽다고. 우리가 방금 봤던 불개미색의 끈적한 액체가 지금 나의 거기서 나오고 있다고. 수치스럽게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순 없었다.

다행히 그 나잇대 아이들은 모든 촉수가 자기 자신을 향해있기 마련이고, 아마 나의 걸음걸이가 상당히 어색했을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몇 분 후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여전히 고통에 찬 채 어기적거리며 집을 향해 갔고, 집에 도착한 뒤에는 엄마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엄마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화장실 밖에서 나를 부르며 문을 두드렸고, 나는 곧장 팬티를 내렸다. 언젠가 학교에서 간 체험학습에서 천연 염료에 흰 색 무명천을 담갔다 뺐을 때처럼 팬티는 온통 빨간색으로 푹 적셔있었다.

나는 두 눈을 꾹 감았다.


풀밭에는 맨홀 뚜껑이 있었다. 초록의 한가운데 동그랗게 덜컹거리는 때탄 회색. 그 부분을 제외하면 그곳은 항상 짧은 풀들로 빽빽했다. 훗날 어느 여름방학 때 알게 된 것이지만, 그 풀밭에선 매일 잔디 깎는 기계를 든 경비아저씨가 벌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의고사 공부를 하던 나는 그 소리에 못 이겨 결국 도서관으로 향했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면 깎여진 잔디의 쨍한 냄새가 코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무렵 쯤, 그 사이의 검정색 울타리는 겨우 나의 무릎 정도 높이였다.

언젠가 어릴 때, 여전히 울타리가 나의 허리쯤 왔을 때, 그곳에 엉덩이를 대고 반쯤 기대어 걸터앉은 적이 있다. 우리는 다 같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몇몇은 놀이터에 서있었고 몇몇은 풀밭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울타리에 걸터앉아있었다. 내가 놀이터와 풀밭, 둘 중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늘 그렇듯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그저 내 신발 속엔 여전히 꺼끌한 모래가 들어있었다는 것, 풀밭의 풀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발목 정도 길이였다는 것. 그리고 울타리 위를 기어다니던 여왕개미 한 마리.

이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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