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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by 손성유

엄마는 「폭풍의 언덕」을 좋아했다. 초여름, 태풍이 오면 엄마는 항상 밖에 나가곤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새까매지는 하늘에서 나는 천둥소리를, 엄마는 사랑했다.


내가 처음 「폭풍의 언덕」을 읽은 건 초등학생 때였다. 교실 뒤편에 먼지가 잔뜩 쌓인 채 일렬로 놓여있던 학급문고에서 나는 에밀리가 남기고 간 유일한 소설을 발견했고, 그것을 다 읽은 뒤에는 곧바로 바로 옆에 꽂혀있던 「제인 에어」를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반대의 순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열 두 살 쯤. 거의 같은 시기에 읽어서인지 몇 년 동안 나는 그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였는데, 머릿속에는 항상 두 스토리가 한데 모여 혼잡하게 뒤섞여있었다. 에밀리와 샬롯. 그 둘이 자매였다는 사실은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중학교 2학년 영어 교과서에 샬롯 브론테의 소개와 함께 「제인 에어」의 한 구절이 발췌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언제나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심지어 작가가 된 이후에도, 엄마는 진짜 작가가 되어야 한다며 자신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보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꼬맹이였던 나 역시 그런 아빠 옆에 서서 엄마를 보며 함께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나는 분명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동시에 엄마가 부끄러웠다. 엄마 역시 그 사실을 알았으나 자신도 스스로를 부끄러워했기에 그것은 그녀에게 별로 타격을 주지 못하였다.

엄마는 내가 아빠를 닮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동그란 얼굴과 하얀 피부, 늘 100점이었던 수학 시험지와 자신만만한 성격. 엄마와 아빠는 나의 그것들을 흐뭇해했고, 나 역시 그런 그들을 보며 우쭐했다.

나는 언제나 아빠의 세계에 있고 싶었다. 엄마와 달리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빠는, 명문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공대를 졸업하여 평균 이상의 돈을 벌었다. 아빠에게 그 모든 것은 정말 당연한 것들이었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스스로 통제 가능한, 언제나 비릿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곳에 언제까지고 있을 수 있으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자신감이 넘쳤고, 손익을 따질 줄 알았으며, 심지어 수학 과학 영재로 뽑히기까지 한, 현실을 사는 아이였다.

우리 집에는 꽤 비싼 스피커가 있었는데, 엄마는 아침마다 항상 그 스피커로 우리를 깨웠다. 진열장 가득한 클래식 CD는 성악 써클로 활동했던 엄마가 고등학교 때부터 모은 것들이었다. 가끔 엄마는 CD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것이 너무나 싫어 견딜 수가 없었다.

몇 십 년 만에 온다는 큰 태풍으로 인해 학교가 휴교령을 내렸을 때도, 엄마는 그 스피커로 나를 깨웠다. 어떤 곡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안정적인 음조로 진행되던 곡이 중간에 타악기의 거대한 울림 이후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타악기의 불안한 전조만이 기억날 뿐이다.

엄마는 우리를 깨워놓곤 바로 산책을 나갔다. 먹구름이 마치 하늘이란 하늘은 다 먹어치워 버린 것만 같았고, 창문 너머로는 바람이 공기에 저항하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커튼을 걷어보니 언제나 잘 가꾸어져있던 아파트 화단의 나무들이 뽑혀있고, 나뭇잎들이 공기 중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불길해보였던 나는, 엄마에게 나가지 말라며 애원했다. 태풍으로 인해 회사를 가지 않은 아빠 역시 나와 함께 엄마를 말렸지만,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엄마는 태풍이 올 때면 늘 우리를 모두 뿌리치고 기어이 현관문을 나섰다. 그러면 우리는 창밖을 보며, 긴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바람이 내는 소리는 마치 삶에 분투하는 그것과 같아서 나는 언제나 섬뜩했고, 아침을 깨운 스피커의 클래식만큼이나 거세었다.

엄마는 그렇게 한참을 걷다 들어왔다.

초등학생 때는 늘 상위권의 성적을 받았던 나는, 중학생 때는 중상위권으로, 고등학생 때는 중위권으로 점차 위치를 옮겨갔다. 수학 과학 영재는 뽑힌 지 1년 만에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렸으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점차 학교에 나가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나는 그저 닥치는 대로 걸어다녔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을 내딛었고, 하루는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다섯 살 때 다니던 어린이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은 무척 외곽에 있어서 마을버스도 지하철도 다니지 않던 곳이었다. 높다란 담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집들, 곳곳의 조그마한 카페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밭들로 둘러싸인 풍경은 너무도 낯설었다.

엄마의 배웅 속에서 빨간 원복을 입은 나는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선생님은 웃으며 나를 맞이했고, 창문 밖으로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십대의 끝자락이 되어 나는 그곳을 다시 걸어다녔다. 어린이집 마당에서 배추를 심던 날의 흙냄새, 실내의 한가운데에 있던 널찍한 파란 수영장을 가득 채운 물의 눈부심, 친구들 전부 집에서 가져왔던, 발목까지 내려와 드레스처럼 된 아빠의 와이셔츠. 그것을 입은 채 모두가 흠뻑 젖었던 물총놀이, 그리고 그날의 햇빛. 그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몇 시간을 내리 그 부근을 걸으며, 어쩐지 나는 그 모든 것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만 같았다.

햇빛이 짱짱했고, 나는 그것에 타들어갈 것만 같았다.


언젠가 엄마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나는 성은채야! 나는 엄마가 아니야!”

그런 엄마를 보며 어린이집에 다녀온 나는 가방도 벗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엄마가 엄마가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야? 그럼 엄마는 마녀인 거야? 점차 눈물이 차올랐다.


이제는 가야할 시간이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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