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매일같이 다니던 길의 한가운데,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발자국이 있었다. 길을 걷다보면 항상 그 발자국을 마주쳤고, 그러면 나는 그곳에 한참을 서서 그것에 내 발을 갖다대보기도 하고, 잠시 주저앉아 손으로 그 족적의 울퉁불퉁함을 느껴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인 흙바닥의 발자국도, 날이 따뜻해지면 녹아 없어져버리고 마는 눈 쌓인 길에 난 발자국도 나의 시선을 끌진 못하였다. 여름이 되면 송충이가 엉금대고 장미가 무성해지는, 그 굴다리 밑 시멘트 바닥에 새겨진 발자국. 나는 오로지 그것에 몰입할 뿐이었다.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 황급히 누군가 장난으로 새겨놓은 발자국 치고 그것은 꽤나 정갈하게 굳어져 있었다. 위치상 그곳에 발자국을 새기려면 그곳까지 걸어온 발자국과 되돌아가는 발자국까지 있어야하건만, 오직 그 시멘트 바닥의 한가운데 그것 하나만 덩그러니 찍혀있을 뿐이었다.
시멘트 발자국이 있는 그 길 옆에는 자그마한 야산이 있었는데,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그 야산으로 통하는 길은 모두 막혀있었다. 이유 없이 처음부터 왠지 어색한 꼴을 갖춘 것들은 언제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동네 꼬마들은 일제히 그 산으로 도둑이 도망쳤다는 괴담을 성실히 퍼날랐고, 가끔은 도둑이 아닌 바바리맨이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한 소문은 우리의 호기심을 완벽히 충족해주어 그곳을 지날 때면 괜히 오싹해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 길은 우리 집과 많은 장소를 이어주었기 때문에, 놀이터와 풀밭, 학교, 상가, 그리고 지하철까지, 우선 밖을 나가거나 혹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항상 그 발자국이 새겨진 길을 지나쳐야만 했다.
그 날도 그저 그런 날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밤늦게 학원을 다녀오던 길이었고, 조금은 컸지만 여전히 그 길에 부여된 소문으로 인한 음산함을 의식하던 나이였다. 이어폰을 꽂은 채 걷고 있던 나의 뒤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한 채 나는 걸음을 서둘렀고, 이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더이상 누군가 나의 뒤를 쫓아오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맹목적인 공포만이 남을 뿐이었다.
저 멀리 장미덤불이 보였고, 나는 시멘트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옆으론 익숙한 풍경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놀이터와 풀밭, 약수터와 울타리….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던 와중, 나의 한쪽 발이 무언가에 걸렸고, 나는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아마 그 정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시멘트 위에 새겨진 발자국이었겠지.
다행히 그날 나는 안전하게 귀가하였다. 넘어져서 생긴 상처는 말끔하게 나았고, 내가 살았던 우리 단지는 재건축이 된 지 오래이다. 그때의 모든 것이 허물어져 버린 지금, 더 이상은 그 발자국을 보지 못하겠지만, 어쩐지 나는 언제든 다시 그것에 걸려 넘어질 준비가 되어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늘, 이번에는 상처가 말끔히 나을 만큼 나의 운이 좋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닿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