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린 댄서

by 손성유

동사무소 문화센터의 발레 수업에서 나는 ‘하이디’라고 불렸다. 나의 얼굴은 유독 하얬고, 새까만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서 달랑거렸으며, 붉은 입술로는 상대를 가릴 것 없이 조잘대기 일쑤였다. 은퇴한 지 몇 십 년이 지난 중년의 발레리나였던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하이디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얀 얼굴에 까만 단발, 붉은 입술의 대명사는 백설공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의 나를 생각해보면 백설공주보다는 하이디가 훨씬 잘 맞는 수식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마다 나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동사무소로 향했다. 디즈니 프린세스들이 그려진 분홍 가방에는 하얀색 타이즈와 토슈즈, 수영복처럼 생긴 검정 레오타드, 그리고 쉬폰 소재의 랩 스커트가 들어있었다. 나는 짧은 다리로 동사무소의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수업이 진행됐던 대강당의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구석에는 수십 장의 매트들이 쌓여져 있었다. 수업은 11-13살 사이의 여자 아이들 여덟 명 정도로 구성되었는데, 강당에 도착하면 우리는 먼저 옷을 갈아입고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우리의 키높이로 쌓여있는 매트 위에 올라가 옹기종기 앉아 있곤 했다.

그 위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나름의 안락을 찾았고, 아무리 비좁아도 그 꼭대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오면 우리는 곧바로 내려와 방금까지 우리가 앉아있던 그곳을 허물며 하나씩 매트를 가져다 각자의 자리에 놓았는데, 그러고 나면 이제 수업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먼저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그러곤 바 옆에 서서 손을 그 위에 올리곤 무릎을 구부렸다 펴고, 발을 들었다 내리고, 팔을 머리 뒤로 넘기다 배 앞에서 동그랗게 말기를 반복했다.

“하이디- 손 제대로 해야지.”

선생님은 언제나 손 모양을 지적했다. 그림자놀이를 할 때처럼 손은 항상 똑같은 모양을 유지해야만 했는데,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부드럽고도 날렵하게 이어지는 그 선을 볼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쾌감에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그럴 때면 나의 시선은 온통 손에만 집중되어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손을 살랑대보곤 했는데, 선생님은 늘 귀신같이 그런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말에 다시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했지만, 시선은 그저 맨손에서 바 앞에 놓인 전신 거울 속의 손으로 옮겨갈 뿐이었다.

처음 우리가 무대에 선 건,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매년 치르던 축제 때였다. 축제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선생님은 우리를 밤 9시까지 붙잡아두었다. 밤 아홉 시 이후의 세상은 없는 줄로만 알았던 어린 아이들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시간이었다. 언제나처럼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바 옆에서 기본 동작을 연습하고, 그리고는 대강당의 무대 단상 위에서 한 명씩 줄지어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하길 반복했다. 선생님은 mr을 켜고 끄기 위해 수 십 번을 왔다 갔다 했고, 우리는 어두운 창밖을 보며 뭐가 그리 신나는지 조금은 흥분하여 늘 킬킬대고 있었다.

나는 무대에 가장 먼저 등장하여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선생님은 우리 하이디-가 이런 역할에 제격이라며 최대한 앙큼한 표정을 지으라고 하였는데, 나는 그 말에 우쭐하여 더욱 열심히 과할 정도로 표정 연기를 해보였다. 선생님은 만족하여 웃으며 박수를 쳤다.

연습이 끝나면 선생님은 우리를 동사무소 바로 옆에 있던 포장마차로 데려가 떡볶이와 오뎅을 사주었다. 떡볶이는 조금 매웠고, 국물에서 바로 꺼낸 오뎅에선 김이 펄펄 나고 있었다. 마치 처음 보는 것만 같은 새까만 하늘 위로 하얀 김이 올라가는 모습은 왠지 발레를 할 때의 그 손끝을 떠올리게 했다.

공연 당일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대강당에 모여 마지막 연습을 했다. 의상은 그저 우리가 평상시에 입던 검정 레오타드에 빨간색 스팽글이 달린 치마만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모두가 무스를 이용해 동그란 망에 머리를 넣어 묶은 상태였는데, 어린 내 눈에는 그것이 조금 부자연스러워보였다. 다행히 나만은 머리가 짧은 탓에 어떻게 해도 하나로 묶이지 않아 단발 머리 그대로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나는 가족들은 물론 학교 친구들에게까지 꼭 내가 발레하는 것을 보러오라며 다소 집요하게 초대하여, 얼른 무대에 올라 내 모습을 보이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야외무대 옆 흰 부스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직전에 추가한 안무를 절대 까먹지 말라며 당부했고, 나는 걱정 말라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녁과 밤 사이에 올라간 무대는 생각보다 너무 추웠고, 흰색, 빨간색, 초록색, 분홍색이 교차되던 조명들 때문에 앞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나는 결국 무대 직전 추가된 안무를 까먹었고, 그럼에도 그 앙큼한 표정만은 잊지 않아 꽤나 성공적인 무대를 보였다는 사실, 그리고 구경하러 온 친구가 선물해준 꽃다발과 선물. 그뿐이다.

선생님은 우리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하이디- 너 결국 안무 까먹었더라?” 하는 핀잔은 잊지 않았다.

축제 때의 무대를 좋게 봐준 관계자가 있었는지, 우리는 연이어 다른 무대에도 서게 되었다. 우리는 똑같이 매번 9시까지 연습했고, 끝나면 선생님이 떡볶이와 오뎅을 사주었으며, 여전히 저번과 같은 mr과 안무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공연날 아침부터 엄마들이 와서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묶어줬는데, 어찌나 분업이 잘 되었는지 여섯 명의 엄마들 중 세 명이 아이들을 화장해주면, 바로 옆에 일렬로 앉은 나머지 엄마들이 화장을 마친 아이들의 머리를 묶어주었다. 우리 엄마는 오지 않았다. 의상은 여전히 우리의 연습복인 검정 레오타드에 붉은 스팽글이 달린 치마뿐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화장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입술은 원래 나의 입술보다 3배는 커보였고, 눈에는 검정 싸인펜으로 줄을 그어 언젠가 책에서 본 이집트 파라오가 생각났다. 그리고 마무리로 발라주던 파우더에서는 역한 냄새가 났다. 엄마들의 반짝거리는 눈을 생각해보면, 엄마들은 그 모든 것이 꽤나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친구-”

화장을 끝내니, 머리를 맡았던 한 엄마가 나를 불렀다. 그 엄마는 안간힘을 써서 나의 머리를 묶으려 하였지만 여전히 짧았던 나의 머리는 전혀 다른 아이들처럼 동그랗게 묶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머리를 풀고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여전히 나는 예의 그 표정을 지었고, 이번에는 그때 추가된 안무 역시 잊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선 무대는 그로부터 몇 달 뒤였다. 선생님은 새로운 mr과 안무를 준비해왔고, 우리는 몇 달 동안 그것들을 연습해야만 했다. 이번에는 특이하게 세 파트로 나누어진 안무를 추어야만 했는데, 모두가 첫 파트에 등장하여 춤을 추다, 나-하이디-를 비롯한 몇 명은 그대로 두 번째 파트를 이어 추고, 나머지는 잠시 퇴장을 했다가 세 번째 파트에 다시 등장하여 춤을 추는 형태였다. 세 번째 파트에서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오기 전, 우리는 바톤을 터치하듯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춤을 추는 첫 파트는 예전의 안무와 비슷했고, 전체적인 분위기 역시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때 그 표정을 짓고 있으면 되었다. 두 번째 파트 역시 첫 파트가 거의 그대로 이어지는 격이었고, 가장 긴 세 번째 파트부터 클래식한 무드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점프를 하고 아라베스크를 하는 여러 동작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꽤나 어려운 것들이어서 연습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10시까지 연습을 하곤 하였는데, 나를 포함해 세 번째 파트에 등장하지 않는 아이들은 남는 시간 동안 매트들을 정리하고, 그 산더미처럼 쌓인 매트 꼭대기에서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의 동작을 봐주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쩔 때는 수업의 반을 그 위에 앉아있었다. 자리가 널널했다. 거울에 비친 연습하는 아이들의 손끝으로 시선이 박혔다.

공연 날 아침은 굉장히 분주했다. 예전처럼 엄마들이 화장과 머리를 해주기 위해 몰려왔고, 선생님은 의상을 픽업해왔다. 푸른빛을 내뿜는 튀튀의 치마는 곧게 치솟아있었고, 반짝이는 크리스탈이 촘촘히 붙어있었다. 옆에는 두 번째 파트를 하는 아이들을 위한, 그동안 입었던 붉은 스팽글 치마가 던져져있었다. 엄마들은 푸른 튀튀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대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리번거렸지만, 여전히 엄마는 그곳에 없었다.

그러니까 공연은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예전처럼 붉은 스팽글이 달린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올라 첫 번째 파트를 한다. 중간에 몇몇이 퇴장하고, 남은 아이들은 그대로 춤을 춘다. 이것이 두 번째 파트이다. 그동안 퇴장한 아이들은 푸른 튀튀로 갈아입는다. 세 번째 파트가 시작되면 푸른 튀튀 아이들이 무대에 오르고, 두 번째 파트 아이들은 퇴장한다. 디 엔드.

엄마들이 해주는 화장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고, 이번에는 나의 머리 역시 모두와 같이 뒤로 묶어 망에 집어넣어졌다. 머리통이 뜯길 것만 같았고, 머리카락은 무스로 인해 단단해졌으며, 너무 세게 묶은 나머지 누군가 내 양눈을 옆으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머리에서 나는 무스 냄새와 얼굴에서 나는 파우더 냄새로 인해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동사무소 근처에서 공연하던 그동안과 달리, 선생님은 트럭을 빌려 우리 모두를 한꺼번에 태워 공연장으로 데려갔다.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 뻥 뚫린 트럭의 짐칸은 마치 오랜만에 모두가 대강당의 매트 더미 위에 앉아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고, 그날따라 유독 파랬던 하늘 밑에서 사방으로 바람을 느끼며 양옆으로 지나가는 차들의 지붕을 볼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시야를 가로막지 않았고, 시원한 바람에 무스와 파우더 냄새도 날라가는 것만 같았다.

리허설을 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예전의 그 표정을 지었고, 어떤 안무도 까먹지 않았다. 첫 번째 파트가 끝나고 아이들이 내려갔다. 나는 여전히 무대에서 춤을 췄다. 두 번째 안무가 끝난 뒤 우리는 무대를 나갔고, 어느새 푸른 튀튀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우리를 지나쳐 무대에 들어갔다. 클래식 mr이 나왔고, 얼마 후 밖에서는 박수소리와 함성이 들렸다. 푸른 튀튀를 살짝 올리며 아이들이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옷에 붙은 크리스탈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문득 나에게 달려있는 붉은 스팽글이 조잡해 보였다.

공연을 모두 마치고서야 만난 엄마 아빠는 잔뜩 화가 난 것만 같아 보였다. 엄마와 아빠는 그 공연을 본 후 곧장 발레를 그만 두게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엄마, 아빠의 분노로 가득했다.

“어떻게 마른 애들만 예쁜 발레복 입혀서 진짜 발레를 하게 하고, 통통한 애들만 모아서 대충 시간 때우기 용으로 쓸 수가 있어? 너무나도 명백하게 눈에 보이잖아.”

“무슨 공주와 무수리도 아니고. 이번 달까지만 하고 당장 그만 두게 해.”

뒷좌석에서 문득 우리 가족의 4인용 승합차가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바로 옆에 차들이 붙어있었고, 바람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창문을 닫았다.


얼마 전, 방을 치우다 공연이 끝나고 찍었던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여덟 명의 아이들이 분장을 지우지 않은 채 나름의 포즈를 잡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붉은 스팽글 치마를 입고 있었고, 가운데서 얼굴 밑에 꽃받침을 한 채 웃고 있었다. 사진을 뒤집어보니 선생님의 메모가 있었다. 하이디- 웃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구나.

keyword
이전 07화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