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리프트를 바라보는 것만큼 이상한 일은 없다. 대공원을 산책하며 나는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 리프트가 줄지어 매달려 늘어져 있었고, 그 밑에는 결코 투명하지 않은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수를 감싸고 있는 기다란 둘레길을 나는 매일 걷는 것이었다.
우리집 근처에는 대공원이 있었다. 그 안에는 동물원과 식물원, 놀이공원이 있어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온 방문객으로 북적이곤 했다. 나 역시 어릴 때는 주말이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향했는데, 나는 언니와 나이 터울이 꽤 나는 편이었기에 주위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체력적으로 쇠퇴했던 엄마 아빠는 자신들이 아닌 친구와 가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그럴 때면 나는 앙칼진 목소리로 “나는 엄마랑 아빠랑 손잡고 가고 싶거든?” 이라며 응수하곤 했다.
이미 중학생이었던 언니를 제외하곤 우리 가족은 모두 한 사람 당 10만원을 내면 1년 간 대공원의 모든 것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연간회원권이 있었다. 각종 테마파크 입장권은 물론 코끼리열차나 리프트 따위의 것들까지 포함되어있었는데, 엄마와 아빠는 뽕을 뽑아야 한다며 대공원에 가면 언제나 리프트를 타곤 했다.
일단 승강장에 가면, 직원들은 우리의 자리를 배열했다. 가장 가벼운 내가 그 3인용 리프트의 가운데에, 그리고 나의 양옆에 엄마와 아빠가 앉았는데, 이 모든 것은 예기치 못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승객들의 무게를 적당히 배분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엄마와 아빠의 사이에 앉아있었다. 그 위에서 무엇을 바라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저 안전바를 내리던 엄마아빠, 입장과 퇴장을 도와주던 직원들. 그리고 그 위에서 나는 대충 행복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내가 대공원의 풍경을 더욱 낱낱이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도 몇 년이 지나고 나서이다. 휴학을 하고 나는 매일 새벽마다 대공원으로 산책을 갔는데,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어 밤에도 잠을 자지 않다가 조금이라도 해가 뜰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곧장 밖으로 나서곤 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어릴 때와 달리, 평일 새벽의 대공원은 정말이지 고요했다. 아직은 어스름했으며, 풀벌레소리를 제외하고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간혹 산책을 나온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있었으나, 그 시간에 이곳을 거니는 이들은 모두 암묵적인 침묵을 각오하고 온 이들이기에, 나는 충분히 사색을 즐길 수 있었다.
분명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 대공원에는 드넓은 호수가 있었고, 저 멀리 흐린 녹색의 산이 보였으며, 야생의 나무들이 즐비했다. 호수 위 다리를 걷다보면 습한 물비린내와 나무뿌리냄새가 났다. 그렇게 조금 걷다보면 동물원의 짐승 냄새가 미처 숨겨지지 않은 채 은근히 나의 코를 감돌았고, 저 멀리선 원숭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어서 풀밭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샌들을 신은 내 발엔 복슬복슬한 차가움이 묻어났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텅 빈 리프트가 멈춰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산책을 하다가도 자꾸 멈춰 서서 리프트를 봤다. 어느 각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잘 걷다가도 문득 뒤를 돌아 정지해있는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나의 그러한 행동이 다소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의식하여 자제하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그 풍경을 힐끗거리고 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리프트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 보이는, 유유히 하늘 위에 떠있는 리프트. 그것이 호수 위를 지나갈 때면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여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은 내가 타인을 사랑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얼마 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면 문득 좌절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언젠가 그 리프트를 타고 우리는 맹수들이 갇혀있는 깊숙한 동물원에 도착했다. 나는 여전히 엄마아빠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나는 큰소리로 땡깡을 부렸고, 그 순간 우리 안에 갇힌 모든 동물들이 사납게 울어댔다. 늑대와 코요테, 사자…. 제각기의 포효가 들려왔다. 나는 너무나도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아빠는 곧장 나를 안아 들어올렸다. 엄마는 옆에서, 나 때문에 동물들이 놀라서 그렇다고, 맹수들은 예민해서 조용히 구경해야 한다며 나를 타일렀다. 그 이후로 나는 동물원에 가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었던 날, 우리는 집에 가기 위해 다시 리프트를 탔다. 돌아가는 길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점차 비가 내렸고,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리프트가 흔들렸다. 엄마와 아빠가 양옆에서 나를 잡아주었으나, 나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엄마 쪽으로, 아빠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리프트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 셋은 모두 잔뜩 젖어 녹초가 되어있었다.
어렸을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리프트를 탄 적이 없다. 문득 오랜만에 리프트를 타고 싶었다. 이제 나는 어느 자리에 앉을까. 나는 어느덧 의심의 여지없이 가운데에 앉기에는 무거워졌고, 엄마와 아빠는 더 이상 나의 고집에 못 이겨 함께 리프트를 타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동물원에 가고 싶었다. 대공원의 가장 깊숙이 있는 그 곳에, 맹수들의 울부짖음과 호소로 가득한 그곳에 나는 가야만 했다.
일순간 호수가 반짝였다. 드디어 해가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