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내일도 아무렇지 않게 떠오를 해가 야속할 때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by 초록

다음 날, 나는 학교 중앙 도서관 로비에서 노트북을 펼친 채 머리를 북북 쥐어뜯고 있었다. 따듯한 햇볕을 즐기며 지나가는 학생들 가운데 오직 나만이 그 햇볕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수강 철회 기간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만 노트북 화면 위에 떠올랐고 난 눈을 희번덕이며 f5키를 부서져라 눌렀다. 아마 내 근처 10m까지는 살의의 기운이 느껴졌을 거다.




어제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했기 때문일까 아무렇지 않게 또다시 떠오른 해에도 몸이 가뿐했다. 평소 같으면 몇 십 분을 뒹굴거렸을 내가 벌떡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가장 치를 떠는 영어 강의가 있는 날이기에 더 정신을 번뜩 차려야 한다.


“그랫!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어! 오늘부로 난 다시 태어났다!”


운동화를 신고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최애 곡을 흥얼거리며 30분을 내리 달렸다. 한국인은 밥심이라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그저 밥 잘 먹는 게으름뱅이가 될 뿐이다. 달리면서도 해야 할 일을 복기한다. 밥 먹고, 씻고, 화장하고, 옷 입고, 버스 타고, 강의 듣고…


모든 게 순조로운 아침이었다.




10시 반, 강의실 입성과 함께 쏼라쏼라 영어가 귓등을 때린다. 여긴 한국인가, 미국인가. 웃긴 건 명백히 이곳은 한국이고 학생을 포함한 교수님 또한 한국인이다. (이게 정말 올바른 교육인 건지 필자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우스꽝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잘 작동되는 녹음기에 안심하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영어 속에서 핵심이라는 물고기를 건지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핵심이 곧 전체요…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면 난 3학년이고 이건 4학년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이 상황에서 이건 옳은 걸까요?’와 같은 요상한 질문으로 학생들이 핵심에 도달하기를 원했고 그저 낚시 바늘을 던져 물고기라는 핵심을 낚고자 했던 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세 글자 탈 주 각


강의가 끝나고 밥도 거르고 도서관으로 빤스런 했다. 도서관은 따시고 차분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니까. 후다닥 노트북을 켜고 학사일정을 확인해 보는데 이게 웬걸 어제까지였다. 뭐가?? 수강철회가!!!!!! 머릿속에서 어마무시한 생각의 흐름이 지나간다.


‘지금 이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공부해 봤자 이 수업은 빼박 C 이하인데… 내 인생에 C학점이라니??? 절대 있을 수 없어. 그럴 바엔 그냥 F를 맞고 4학년 때 재수강을 해서 A를 받는 게 났지. 아니 그러면 총학점이 낮아지는데 다음 학기 기숙사, 장학금은 어떡해?? 이거 때문에 돈을 배로 날리게 생겼어!!! 이 수업만 없으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은데 누가 나 좀 살려줘!!! 그냥 교수님 찾아가서 무릎 꿇고 빌까?? 내가 어제 동아리만 안 나갔으면 어제 철회하는 건데ㅠㅠ 어떻게 어제가 마감일수가 있냐고!!ㅜㅜ바보 같은 나 새끼. 진짜 이 수업만 없으면 숨통 트일 것 같아요!!!! 누가 나 좀 살려줘!!!!!'


수 천 번 나를 자책했을 때, 달라지는 건 없었고 불안과 초조만 극에 달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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