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 보인다고 쉬운 게 아니네?
1장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범했던 유창성 오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올해 초, 새 학기 계획을 세울 때의 일이다. 1년간의 휴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복학을 하게 되면서 나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떠 있었다. 어떤 새로운 사람들과 어떤 일들을 해낼지 상상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 목표는 성적, 대외활동, 자격증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내가 실제로 설정했던 이번학기 목표였다.
1. 21학점을 들으면서 4.0 이상의 학점
2. 음악 매거진 동아리 가입
3. 영상 제작 학술 모임 가입
4. 토익 850점 이상
5. 데이터 DSAP 자격증을 취득
6. 일주일에 알바 8시간씩
7. 친구와의 약속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목표로 보이는가? 지금 보니 정말 터무니 없고 황당한 수준의 현실감 없는 목표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던 그 당시의 나는 나의 멋진 모습만 상상했기에 이런 목표를 설정했던 것이다.
도서관에서 요점노트를 정리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동아리에서 노트북을 두들기며 동아리원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아티스트를 인터뷰하는 멋진 나의 모습, 영상 제작 학술 모임에서 제 몫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해내 상을 수상하는 모습 등의 과정이 머릿속에서 수월하게 그려졌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맹목적인 낙관주의, 유창성 착각에 빠져있었다. 내가 힘들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밤새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부정했다. 맹목적인 낙관주의의 끝은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했던 나는 동아리에 가도, 친구를 만나도 해야 할 공부 생각에 노이로제에 걸린 것처럼 늘 조급했다. 그러다 보니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에 충실하지 못했고 그렇게 집에 가는 길에는 어느 것 하나 충실하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자책은 자존감을 무너지게 했고 무너진 자존감은 타인을 만나는 것을 어렵게 했다. 그렇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는 휴학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내가 유창성을 오류를 범하지 않고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새 학기 계획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었을지 함께 살펴보자.
우선, 맹목적인 낙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쉬고 싶은 날, 몸이 아픈 날 등 계획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게 될 장애물들이 있음을 인식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번개 약속으로 해야 할 일을 다음날로 미루면서 고통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아무튼 최소한이라도 이런 변수들을 설정해 놓고 최대 50퍼센트의 시간을 추가로 들일 것을 예상하며 목표량을 세웠어야 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계획이 뒤틀리거나 변수를 마주할 경우를 대비해 심리적으로도 대비해야 한다.
나의 실패를 곱씹는 일은 꽤나 짜증 나는 일이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고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삶이 유튜버의 브이로그처럼 수월하게 진행될 리는 없겠지만, 분명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