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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Dec 03. 2021

맥적산석굴과 석굴 실크로드

석굴암의 원류를 찾아 / 텐수이

맥적산석굴(麦积山石窟[màijīshānshíkū])을 보기 위해 시안에서 란저우(兰州)로 가는 길에 텐수이(天水)에 들렀다. 텐수이에 도착하니 도시 이름처럼 하늘에서 내린 물줄기인지 큰 강물이 두 갈래로 도시를 가르고 있었다. 사이좋게 제 갈 길로 나눠 흐르는 맑은 물과 황토물이 훠궈 냄비의 청탕과 홍탕을 연상시켰다.

      

깐쑤성의 텐수이(천수), 시안에서 란저우 가는 길목에 있다.


기차역 광장에 ‘맥적산행 34번 버스’ 표지판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놓았다. “이런 것 너무 좋아~ 진정 인민에게 다가가는 행정 서비스, 텐수이 공무원들에게 포상을!” 선인애도 맥적산 못지않은 관광지인지 맥적산과 동급으로 안내해 놓았다. 덕분에 현지 관광정보도 건진다.

     

기차역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맥적산석굴에 도착한다.


중국에는 불상을 모셔놓은 거대한 석굴이 많다. 운강석굴(윈깡석굴, 따통(대동)), 용문석굴(롱먼석굴, 뤄양(낙양)), 돈황석굴(둔황막고굴, 둔황(돈황))을 3대 석굴로 꼽고 맥적산석굴은 4대 석굴에 포함된다. 몇 년 전 베이징에 갔을 때 따통의 운강석굴을 가보려다가 못 간 아쉬움에 맥적산석굴을 일정에 넣게 되었다.

     

맥적산석굴은 산(142m)이 보릿단을 쌓아 놓은 것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수직 80여 m 절벽에 석굴 221개가 고층아파트처럼 입점해 있었다. 가파른 벼랑에 아찔하게 매달린 석굴을 보려면 무려 14층에 이르는 층층 잔도(棧道)를 걸어야 한다니 이제 아찔함은 관람자의 몫이다.

      

맥적산석굴 전경


이곳의 석굴은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던 4세기 5호16국시대(304~420)부터 북위와 서위시대, 수나라, 송나라 때까지 천년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한다. 석굴의 불상은 원석을 통째로 깎아 만드는 우리나라와 달리, 돌로 형태를 잡은 후 지푸라기를 섞은 찰흙을 덧붙여 만드는 ‘석태니소(石胎泥塑)’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서벽의 마애삼존불(제98굴, 북위시대), 손상되는 바람에 불상의 조성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역대 왕조 불상 조각의 전시장’이라는 맥적산석굴을 다녀와서 남은 것은 '스릴 넘치는 잔도 체험'이다.  중국은 잔도를 몇 개 묶어 유네스코 문화재 등재 신청을 하면 어떨까? 석굴과 불상은 둘째치고 잔도만으로도 중국인의 땀과 지혜가 담긴 것으로 인류의 보편적 문화 가치로 인정될 유네스코 유산급이다. 

    

잔도 체험의 현장


사실 불상은 그냥 많이 봤다는 기억밖에 없다. 시대에 따라 조악한 것도 세련된 것도 있다고 하나 원래 문외한인 주제에 미리 공부해가지도 않은 내게는 똑같은 불상일 뿐이었다. 잔도를 돌아 내려오며 문화재 볼 때마다 하는 단골 레퍼토리로 관람을 마감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여!’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가 중국을 통해 전해진 우리나라도 불상의 수(數)와 작품성에서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인도와 중국에 흔한 석굴이 우리에겐 없다. 우리의 석불은 환조(丸彫)로 단독으로 조성되거나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 대부분이고 석굴 속에 안치되어 있지 않다. 당시 인도와 중국에 성행한 석굴사원 하나쯤 우리도 갖고 싶지 않았을까? 중국을 넘어 서역과도 활발히 무역했고 수많은 절과 탑과 불상을 만들었던 불교의 나라 신라가 석굴사원이라는 최첨단 국제 트렌드를 좇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건조한 아열대 기후에 사암이 대부분인 인도는 석굴사원이 불교 이전부터 정착했고 석굴사원의 풍습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 중국 또한 사암과 역암의 연질 암석이라 석굴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인도의 아잔타(Ajanta)석굴과 엘로라(Ellora)석굴이 대표적인 불교 석굴이다. 당시 석굴의 명맥은 실크로드 선상의 쿠차의 키질(Kizil)석굴, 트루판의 베제클리크(Bezeliq)석굴, 둔황의 막고굴을 거쳐 란저우의 병령사석굴, 텐수이의 맥적산석굴로 이어졌다. 또 관중평원을 지나 뤄양의 용문석굴, 따통의 운강석굴에 이른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1》(유홍준) sp97-99, 137) 


이런 석굴의 유행이 불국토를 꿈꾸었던 신라 땅에까지 도달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인공 석굴사원인 석굴암이다. 석굴 실크로드의 종착지에 석굴암이 있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경주까지. 석굴 실크로드


사실 석굴은 신라 땅에는 애당초 불가능한 공법이었다. 경주는 거대한 마그마가 통째로 식어 굳은 화강암이 지천인 곳으로, 화강암은 입자들이 쌓여 만든 사암이나 역암 같은 퇴적암과는 달리 단단해서 파 들어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시 유행을 따라 석굴사원을 만들고 싶었던 신라인은 화강암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돔 형태로 쌓아 석굴의 천장을 만들고 그 아래 불상을 안치한 후 흙으로 돔을 덮어 인공 석굴을 만들게 된다. 이로써 가장 창의적인 방법으로 세계 유례없는 석굴사원이 완성된 것이다. 

     

세계 유일의 인공석굴사원, 석굴암(751년, 국보 제24호)


경주의 석굴암보다 시대가 앞선다는 군위의 삼존석굴 또한 석굴사원이다. 다만 천연 동굴에 조성되었다는 점이 석굴암과 다르다. 경주의 단석산에서도 ㄷ자 모양으로 서 있는 큰 바위의 측면 세 군데에 불상을 새기고 기와지붕을 덮어 석굴사원을 구현하고자 했던 시도를 찾아볼 수 있으니 석굴사원이 당시 사원 건축의 핫템이었던 건 분명한가 보다.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국보 제109호). 예전에는 제2석굴암으로 불렸으나 요즘은 팔공산 석굴암이라고 한다.


경주 단석산의 신선사 마애불상군(7세기전반, 국보 제199호),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


앞으로 맥적산석굴처럼 볼거리 많은 문화재 관광은 '미리 공부하거나 남의 답사기를 갖고 가거나' 둘 중 하나로 해야겠다. 아마도 후자의 방법을 택하겠지. 그나마 가이드할 책마저 챙기지 못했다면 유홍준씨의 관람 팁처럼 ‘관광지 입구 사진’만이라도 집중적으로 찾아보는 걸로. 


맥적산석굴에서 석불 대신 석굴 이야기만 실컷 했다. 이것도 떠들었다고 배가 고프네. 이제 란저우로 가자, 란저우우육면 먹으러.




※ 참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1, 돈황과 하서주랑》(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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