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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30. 2021

시안에서 빵을 먹는 두 가지 방법

시안의 대표 먹거리 / 시안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인구가 100만이 넘었다는 도시, 세계 4대 고대도시 중의 하나인 시안에 왔다. 성벽과 병마용갱, 화청지, 72개의 옛 황제들의 능...볼거리가 넘쳤다.


여기저기 명소들을 헤집고 다니는 사이사이 양꼬치 굽는 냄새와 이국의 향신료 향이 뒤범벅이 되어 여행자의 코를 자극하고 발길을 교란시켰다. 먹는 이야기를 하려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 맛있는 이야기 시작도 하기 전에 침부터 고이는 증상은 이미 학습된 뇌회로의 작동인 걸 어찌 이성(理性)으로 말릴 수 있으랴.

     

사람이 모이는 곳에 문명이 있고 물산이 있다. 시안의 볼거리만큼이나 먹거리가 밀릴 리 없다. 시안에서는 무엇을 꼭 먹어봐야 할까?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시안의 먹킷리스트에 단 하나의 음식을 올려두었었다. 양러우파오모(样肉泡馍[yángròupàomó])였다. 언젠가 TV에서 본 이래 '어떤 맛일까? 실제 비주얼은 어떻게 생겼을까?' 등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음식이었다.

     

파오모는 중국 서북 지방의 음식으로, 후이족(回族 회족) 거리에 파오모 전문 식당이 밀집해 있었다. 파오모는 빵을 잘게 찢은 후 뜨거운 양고기 국물이나 쇠고기 국물을 끼얹어서 먹는 시안의 특색 음식이다. 빵에 양고기 국물을 부으면 양러우파오모(样肉泡馍), 쇠고기 국물을 부으면 니우러우파오모(牛肉泡馍)가 된다.

    

시안은 서북지역의 중심도시로 물이 귀해서 벼농사가 어렵다. 그래서 밀을 재료로 한 빵을 많이 먹는다. 시안은 북쪽으로 몽골 초원과 가까워 소와 양의 무역이 발달했고 시안에 많이 사는 무슬림 후이족은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양고기와 쇠고기가 주된 식재료다. 빵과 양고기의 조합인 양러우파오모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음식이 아닐까.

    

양고기 파오모를 시키니 마른 빵 두 개와 사발 그릇 하나가 나왔다. 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드러운 빵이 아니다. 수분을 최대한 날려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아주 딱딱하고 단맛이 없는 빵이었다. 발효되지 않은 반죽으로 만든 이 빵의 이름은 퉈퉈모(饦饦馍[tuōtuōmó])라고 하며 아랍인들의 주식인 난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빵을 손님이 직접 잘게 뜯어야 한단다. 다 뜯으니 주방으로 갖고 가서 뜨거운 양고기 국물과 양고기 수육 고명을 얹은 후 다시 내왔다.


양러우 파오모의 주재료인 빵(왼)과 빵 뜯기(오) ⓒ위트립
양고기 국물과 함께 먹는 빵 조각은 그 쫄깃한 식감이 수제비 같기도 하고 떡국 같기도 했다. ⓒ위트립


국물 맛이 담백하고 맛있었다. 우리나라의 맑은 갈비탕에 수제비를 뜯어 넣은 맛이다. 당면 사리와 마늘장아찌가 곁들여 나온 한 그릇 값이 웬만한 국수 가격의 두배 이상이니 일품요리 치고는 고급 음식이다.


이곳의 후이족 식당은 술을 판매하지 않는 대신 수제 매실 음료(酸梅汤 쏸메이탕)를 팔고 있었다. 후이족 식당에서 굳이 맥주를 찾아대는 무례를 범하지 않기를, 우리처럼. 나중에 알았지만 후이족 식당은 할랄 음식 전문점으로 식당 간판에 '칭쩐(清真[Qīngzhēn] 이슬람교, 회교)'이란 글자가 적혀있다.


칭쩐 식당. 즉 후이족 식당. 요리에 돼지고기와 돼지기름을 쓰지 않고 술을 팔지 않는다.  ⓒ위트립


파오모가 뜨거운 고기 국물에 빵을 적셔 먹는 것이라면 빵에 고기를 끼워먹는 시안의 명물 먹거리도 있으니, 바로 러우지아모(肉夹馍 ròujiāmó)다. 시내를 다니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길거리 음식이라 한두 개는 사 먹게 된다. 러우지아모는 파오모의 재료인 퉈퉈모 빵을 갈라 그 속에 고기와 야채를 끼워 먹는 시안판 햄버거다. 빵 사이에는 주로 부드러운 고기 조림이 들어있는데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입안 가득 달콤 짭짜름한 고기가 함께 씹힌다.

      

러우지아모. 대체로 양념으로 조린 고기가 들어있다. ⓒ위트립


한양릉 가는 길에 지하철 시도서관역 부근에서 러우지아모 푸드카를 만났다. 아침 출근길에 너도나도 하나씩 사서 테이크아웃해가고 있었다. 빵 사이에 넣을 반찬을 여러 가지 만들어두고 셀프로 끼워먹게 한 아이디어가 신박했다. 가격도 착하디 착한, 개당 3위안(한화 600원). 우리나라도 수제 맞춤형 김밥을 팔면 어떨까? 손님이 원하는 재료만 넣어서 김밥을 즉석에서 말아주는...

    

아침 출근 시간대에 직장인들로 성업 중인 러우지아모 푸드카. ⓒ위트립


이것이 600원짜리 러우지아모의 비주얼~ 속을 너무 많이 채웠나? 먹을 수 있을까? ⓒ위트립


러우지아모(肉夹馍)에 고기가 안 들어갔으니 차이지아모(菜夹馍)라고 해야 하나? 내게는 고기 위주의 퍽퍽한 것보다 훨씬 먹기가 좋았고 씹히는 맛도 좋았다. 길거리 간식을 넘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었다.


시안에 간다면 빵을 먹는 두 가지 방법을 다 체험해보자. '빵에 국물 끼얹어 먹기와 빵에 고기 끼워 먹기'

2014년 중국의 시진핑(習近平)주석이 대만의 롄잔(連戰) 국민당 명예주석과의 만찬에서 양러우파오모와 러우지아모를 대접했다고 한다. 두 사람 다 아버지가 시안이 속한 산시(陝西)성 출신이라 선택된 메뉴라고 한다. 일부 식당은 시진핑과 롄잔이 먹은 산시성 대표 음식 세 가지, '양러우파오모, 러우지아모와 국수 빵빵미엔'을 세트로 묶어 58위안(한화 약 1만 원)에 판다고 하니, 1타3피를 시도해봐도 되겠다.


시안은 문화만 서양과 동양의 교집합이 아니라 음식도 외래의 것이 뒤섞여 새로운 요리와 창의로운 맛을 만들어냈다.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웠던 시안에서 맛있는 것들과 이별하고 이제 텐수이(天水)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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