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트립 Dec 08. 2021

다른 행성으로 놀러 갑니다, 황하석림

양피 뗏목 타고 절경 속으로 / 란저우

란저우(兰州난주)는 황하(黄河)의 도시다. 황하는 중국 북부를 동서로 흐르는 강이다. 티베트에서 발원한 맑은 황하가 황토고원을 지나면서 이름처럼 진흙을 듬뿍 머금은 황토물로 변한다. 황하가 칭하이성(青海省)을 빠져나와 처음 만나는 도시 란저우에 가까워지면서 병령사석굴과 유가협을 차례로 만나고, 란저우를 지나 황토고원을 휘감아 흐르는 누런 물줄기의 연장선상에 황하석림(黄河石林)이 있다.

     

황하석림의 위치


병령사석굴을 가든지 황하석림을 가든지 출발점은 란저우다. 여행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만 가야 한다면 둘 중 어디를 갈까? 문화재에 관심이 있다면 병령사석굴을, 나처럼 자연에 관심이 있다면 황하석림을 가면 된다. 사실 병령사석굴도 황하 유역의 석림에 조성된 거라 넓은 의미로 황하석림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고유명사로서의 황하석림을 보려면 란저우 북서쪽 바이인시(白银市백은시) 징타이현(景泰县경태현)으로 가야 한다.

      

란저우에서 황하석림 가는 길은 녹록하지 않았다. 길 자체는 잘 닦여져 있지만 교통편의 연결이 좋지 않다. 어찌어찌하여 갔더라도 돌아오는 차가 마땅치 않으면 거기서 자고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실크로드 초입이고 갈 길이 멀다. 초보 여행자답게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목까지 찼는데 황하석림 관광에만 1박 2일을 쓰고 싶지 않았다. 란저우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사 당일 투어를 알아봤지만 성수기라 예약이 다 찼다고 했다. 

    

명색이 도시여행보다 자연여행을 더 좋아하는 '자연여행주의자'인 내가 황하석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는 길도 숙박 정보도 제대로 없는 상태였다. 당일치기가 안 될 경우에 대비해 숙박용 필수품만 가방에 넣고 호텔을 나섰다. 어디든 하룻밤 몸 누일 곳 없을까? 란저우 역 옆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징타이현까지 가는 표를 끊고 3시간을 갔다. 중국 여행을 다니면 나도 모르게 '시간 축지법'을 쓰게 된다. 중국에서 3시간 거리는 한국 기준으론 1시간 거리쯤으로 인식하게 된다. 징타이현에 내리니 정오였고 역시나 황하석림까지 가는 차편이 없었다.

     

마침 버스에서 내린 중국인 커플이 우리와 행선지가 같았다. 넷이서 택시를 대절하기로 했다. 흥정 끝에 12시부터 6시까지 280위안. 나올 때는 바이인까지 가는 조건으로 1인당 70위안에 왕복 택시를 구했으니 괜찮은 가격이다. 무엇보다 관광 후 오늘 중으로 란저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황하석림 매표소에서 셔틀과 전동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룽완춘(龙湾村용만촌) 선착장이었다. 이곳에서 황하를 건너야 한다고 했다. 드디어 황하의 명물 양피 뗏목을 탈 타이밍이다. 


양피 뗏목 양피파쯔(羊皮筏子)은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신박한 탈 것이 아닐까? 지구 상에 현존하는 탈거리를 대상으로 ‘세계 이색 교통수단 대회’를 연다면 양피파쯔가 금메달감이다. 뗏목 1대에 양 12마리가 수고를 한다. 양은 죽어서 가죽을 남겼고 배가 되었다. 양은 자신이 죽어 황하를 떠다니며 사람을 실어 나를 운명인 걸 상상이나 했을까? 어쩌면 전생에 인간에게 큰 신세를 지었을지도... 


양 열두마리와 함께 황하를 건너갑니다


앞서가는 양피 뗏목의 중국인 커플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늘의 여행 동지다. 양피 뗏목 타기 전에 캔맥주 2개를 사서 우리에게 건넸다. 시원하게 들이켜다말고 우리 아이들의 당부를 떠올렸다. “엄마 아빠, 여행 중에 중국 사람이 주는 음료수 절대 받아먹지 마” 이미 받아 마셔버렸는데? 어쩔~  

   

황하(黄河)가 아니라 홍하(紅河) 수준의 강물, 양피 뗏목을 타고 3km쯤 간다.


황하의 누런 물결 위에서 뗏목 놀이라니. 유유자적 물 위를 노니니 구름 위를 거니는 신선이 부럽지 않다. 누런 강물과 물 위에 치솟은 붉은빛의 바위와 파란 하늘의 조화가 기묘하고도 아름다웠다. 뗏목에서 내려, 김희선이 영화(신화) 찍고 송일국이 드라마(바람의 나라) 찍었다는 음마대협곡(饮马大峽谷 )으로 들어갔다. 다들 당나귀를 타고 갔지만 우린 호기롭게 걸어갔다. 경치도 보고 사진도 찍고 돈도 아끼고 일석삼조의 대가는 ‘땡볕에 생고생’이었다.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1시간 반이 걸렸다.

      

이제 음마대협곡으로 들어갑니다. 경치가 좋~습니다.


음마대협곡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황하석림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경관이요, 외마디 외엔 어떤 대사도 떠오르지 않았다. ‘와~’ 여기는 어느 행성인가. 그렇지. 나는 방금 케이블카가 아닌 우주선에서 내린 거야. 황량한 바위 숲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었다. 쿤밍의 석림도 위안머우의 토림도 황하석림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난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것인가?


한낮이라 햇빛이 너무 강하다. 색의 대비가 떨어지고 사진이 불량하다. 인터넷에 이미 좋은 사진이 널렸으니...


아름다운 경치엔 두 종류가 있다. 꽃이나 고운 단풍처럼 구상미를 느끼게 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생기 없고 거칠고 황량한 것도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전자가 행복감을 준다면 후자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겸허함을 갖게 한다. 황하석림은 후자에 해당했다. 


사방팔방으로 석림의 지평선 뿐이다.

    

그동안 중국의 자연 절경을 많이도 찾아다녔다. 사진가들에게 인기 있다는 사진 명소도 많이 가봤다. 백두산, 구채구, 황산, 장가계, 호도협, 옥룡설산, 만봉림, 화산, 노산, 칠채산, 화염산, 황궈수폭포, 마령하협곡... 다들 기라성 같은 4A 혹은 5A급 여행지들이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내게 물어왔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질문을 살짝 비틀어 나 혼자 묻고 답한다. “딱 한 곳만 다시 간다면 어디를 가고 싶어요?” “황하석림이죠.” 

     

사실 같은 질문이나 다름없지만 대답하는 이의 주관성을 더 보장받고 싶었을 뿐이다. 황하석림이 누가 봐도 좋고 나만큼 감동할 거란 확신은 못한다. 그러나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여운을 남긴 곳이다. 다시 간다면 당일치기는 절대 사절이다. 하룻밤 머물며 기필코 노을빛 물든 황하석림을 보고 오리라.  

    

아직 관광 인프라가 부족해 개별로 가기 쉽지 않지만 대자연의 풍광을 즐겨 찾는 여행자라면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더 유명해지고 더 편리해져 중국인들로 바글바글거리기 전에!




< 란저우(兰州)에서 황하석림(黄河石林) 가는 법(2016. 여름 기준) >

- 란저우 기차역 부근 시외버스터미널(란저우커윈중신 兰州客运中心) -> [버스3시간] -> 경태현(景泰县 징타이시엔) -> [택시 대절(4명 280元, 12시-6시(6시간 대절)) , 택시1시간] -> 황하석림 입구- 황하석림 입구 - [대형 셔틀버스] - [전동차] - [양피뗏목] - 음마대협곡 도착 - [도보 1시간30분(당나귀 이용 가능)] - 케이블카 타는 곳 - [케이블카 탑승] - 황하석림 전망대

- 황하석림 입장료 125元 : 입장료+대형셔틀버스+전동차+모터보트 포함, 케이블카는 제외(케이블카 요금은 별도임. 왕복 60元)
 ( 양피 뗏목(1대당 90元, 3명이 같이 타면 1인당 30원씩 내면 됨)과 음마대협곡에서의 당나귀 타기는 본인 선택 사항임. )

* 경태현(징타이시엔)에서 용만촌(롱완춘)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 2대가 있기는 있다고 한다.
 * 만약 숙박을 하려면 경태현에서 하면 될 듯. 용만춘에도 숙박할만한 곳(민박형)과 식당이 있기는 했다. 외국인 숙박 허용 여부는 모르겠지만...                  


이전 05화 맥적산석굴과 석굴 실크로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