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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23. 2021

20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여행, 병마용갱과 한양릉

시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두 가지 / 시안

중국에서 딱 2개만 봐야 한다면 뭘 봐야 할까? 만리장성과 병마용갱이라고 한다. 자칭 중국 여행 '쫌' 한 내게 누가 묻는다면 나도 같은 대답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진시황의 작품이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흩어져있던 북방 장성들을 대대적으로 증축하고 정비한 것이다. 병마용갱(兵馬俑坑)은 자신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호위무사들의 흙인형을 무덤 주변 지하 땅굴에 같이 묻어 둔 것이다.

   






    

시안(西安)에 왔으니 병마용갱을 보러 가야지. 가기 전 워밍업으로 진시황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 최초로 중국을 통일해(BC221) 550년간 싸우던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키고 중원을 차지한 자
- 중국의 영문명 "차이나(China), 치나(China)"의 유래이기도 한 진나라의 황제
-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라 칭함.
- 문자, 화폐, 도량형을 통일하고 군현제를 실시하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함.
- 만리장성을 건축함.
- 진나라 멸망 후 불타없어지는데만 100일이 걸렸다는 거대 왕궁 아방궁을 건설함.
- 분서갱유로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생매장시킴.
- 영생을 꿈꾸며 불로초 사절단을 파견시킴. 


무시무시한 이력의 주인공이 묻혔다는 진시황릉으로 향했다. “뭐야? 으리으리한 무덤이 어딨어?” 정작 진시황이 묻혔다는 진시황릉은 오늘날 봉분 70여 미터의 작은 야산으로 보일 뿐이다. 명성에 걸맞은 무덤이 아니었다. 시시하다 못해 실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시황릉의 요란한 부대 건축물은 지상에는 없다. 진시황릉에 대해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에 믿어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진시황이 재위 중에 진나라 도성이었던 셴양(咸陽 함양)을 모방해 자신이 사후에 묻힐 지하 궁전을 조성했는데 무덤 주위에 수은의 강이 흐르고 외부 침입자가 나타나면 석궁이 발사되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또 축조된 무덤의 비밀 유지를 위해 공사를 끝낸 인부들을 산 채로 매장했다는 엽기적 이야기도 기록으로 전해온다. 

    

더 놀라운 것은 현대 과학으로 고증한 결과이다. 무덤 주변 토양의 수은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고, IT 내부 공간 투시 및 초음파 기술에 의해 지하에 능묘 건축의 핵심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쯤 되면 진시황릉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더 이상 믿거나 말거나 수준을 넘어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다. 그러나 진시황릉은 현재 기술로는 훼손 없이 발굴이 불가능해 향후 50년간 발굴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발굴되지 않음으로 인해 불가사의함이 더해졌다. 이것은 2200년전 진시황이 미리 짜 놓은 신비주의 전략?


이런 진시황릉으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서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처음으로 병마용 파편이 발견되게 된다. 흙으로 구운 병사와 말 인형이 대량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그곳은 바로 진시황릉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 딸려있던 부장용 갱이었다. 현재까지 180개의 갱 중 3개의 갱이 발굴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사람 크기의 갑옷을 입은 병사들. 무슨 컴퓨터 게임의 아바타같지 않은가. ⓒ위트립


채색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일부 병사들 ⓒ위트립

 

학예사들은 퍼즐 놀이 중? 최초로 만든 이도 위대하고 복원하는 현대의 학예사들도 위대하다. ⓒ위트립


현재 발굴된 부장갱은 병마용 박물관으로 조성해 놓았다. 추천 관람 순서 3호, 2호 1호를 따라 차례대로 들어가 보았다. 3호갱은 규모는 가장 작지만 병사들의 지휘본부 격이며 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 한대와 68명의 병사가 출토되었다. 2호갱에서는 안장과 고삐를 갖춘 말을 모는 기병과 한쪽 무릎을 꿇은 궁수가 강력한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3호갱에서 발견된 4마리 말이 끄는 전차 ⓒ위트립


한쪽 무릎을 꿇은 궁수가 전방에 포진하고 뒤로 전차와 기병이 배치된, 역동적인 2호갱 ⓒ위트립


보존 상태가 좋은 병마용이라 특별 대접을 받는다. ⓒ위트립


1호갱은 갱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1000여 명의 병사와 24마리의 말이 4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내 앞에 도열해 있었으니. 옷이나 갑옷을 입은 병사 *도용들은 실제 사람의 크기에 준하고 얼굴 모습과 표정이 제각기 달라 더 보는 이의 놀라움을 자아냈다.(*흙으로 구운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인형, 테라코타)    

 

1호갱 내부 전경 ⓒ위트립


시안의 병마용갱 외에 인근 셴양의 한양릉(汉阳陵)도 볼만했다. 병마용갱의 유명세에 가려 관광객이 적은 대신 호젓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한(漢)나라 경제(景帝)와 황후의 무덤인 양릉(阳陵)은 시안 일대의 70여기의 황제들의 무덤 중 유일하게 발굴된 곳이다. 시안의 신공항 건설 중에 발견되었고 총 81개 중 10개의 부장갱에서 한나라 흙인형들이 출토되었다.  

    


진나라의 진시황의 병마용과 대비되는 한나라 한경제 무덤 양릉에서 발굴된 병마용 ⓒ위트립


인형들은 원래 옷을 입고 있었으나 천은 긴세월을 버티지 못한 관계로 졸지에 벗은 몸으로 세상에 나온 인형들 ⓒ위트립


너무 리얼해서 관람객은 잠시 당황모드. 왼쪽부터 환관, 여자, 남자.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채색옷을 만들어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고 평민들은 옷을 입은 형태로 만듦 ⓒ위트립


진시황 병마용갱의 병사들은 당시 남자 키 158cm보다 장신인 170~180cm로 부풀려 만들어진 반면, 한나라의 병사들은 키 60cm로 축소 제작되었다. 실제 사람 키의 1/3 크기이다. 옷을 입혀 복원시킨 한나라 사람들의 모형도 만날 수 있다. 능의 규모나 인형의 수와 크기 등 볼거리로 따지자면 병마용갱에 한없이 밀리지만 진나라의 것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세에서 새끼를 낳으라고 새끼를 밴 동물로 만들어넣었다고 함(왼) & 옷을 입혀 복원한, 마차와 한나라 사람들(오) ⓒ위트립


진시황의 호사스럽다 못해 언빌리버블한 무덤 조성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피와 눈물이 들어갔을까? 반면에 한나라의 한경제는 아버지 문제(文帝)에 이어 중앙집권제를 공고히 하면서도 세금을 낮추고 군비를 줄여 백성의 민심을 안정시켰다고 한다. 선정(善政)을 펼친 황제의 무덤답게 소박한 것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볼거리’가 궁금하다면 시안의 병마용갱으로 가라. 또 한양릉으로 가라. 2000년을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시간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병마용갱과 한양릉 여행 정보(2016년 기준)


< 병마용갱(兵马俑坑 bīngmǎyǒngkēng)=병마용 박물관(兵马俑 博物馆)가는 법 >
- 시안 시내에서 30km, 시안역 광장 동편에서 유5번(306번) or 915번 버스, 55분 소요, 요금 6元
   화청지에서는 버스 15분(요금 3元) 소요, 버스 하차 지점에서 병마용갱 입구까지 도보 가능
-  발견된 순서대로 1호, 2호, 3호, 관람 순서는 3호->2호->1호 추천 


< 한양릉(汉阳陵 博物馆 Hànyánglíng bówùguǎn)가는법 >
- 셴양(함양 咸阳)에 위치.
- 지하철 시도서관역 D출구 유(遊)4번 버스, 50분 소요, 8:30부터 출발, 버스요금 2元
   입장료 하절기 80元, 동절기(12-2월) 65元
- 관람 포인트
   1) 함양 박물관-서한병마용관, 한나라 때 테라코타
   2) 무릉 박물관(300m 지점에 무제의 능이 있음) 
   3) 건릉 박물관(고종과 측천무후의 합장묘, 영태공주묘의 시녀도 벽화가 유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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