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위트립 Jun 01. 2022

제주에선 걱정 말고 설레어라 - 제주 한달살기 후기

제주 한달살기(8)

육지사람이 제주에 오게 되면 하는 인증 루틴 3단계.

1. 공항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야자수를 보고 "와, 제주다" 소리친다.

2. 해안도로 달리다가 아무 바닷가에나 차 세워 고 "야, 바다다" 탄성과 함께 카메라 셔터 찰칵찰칵.

3. 등 돌렸을 때 완만하지만 존재감 뿜는 산 하나가 보이면 '아, 저거 한라산 아냐?' 이로써 증 마감이다.


다들 육지에서의 복잡 다난한 일가족과 직장의 각종 관계망을 끊고 물리적으로 단절된 섬 제주에 간다. 제주 을 밟는 순간 가 뭍에서 뭘 하던 사람인지 잊게 되고 어제의 일조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남력 상실자가 된다. 이 맛에 다들 제주로 자발적 유배를 떠나오는 겠지.


한 달 살기로 제주에 있으니 길에서 주치는 여행자 중 내가 '최고 시간 부자 여행자'다. 고급 승용차를 안 타도, 바다 뷰의 세련된 카페에 안 가도, 줄 서는 맛집 한 번 안 가도 좋기만 하더라. 해 지면 몸 누일 소박한 공간 하나만 있으니 제주의 바다와 산과 숲길 무한정으로 내 것이 되었다.



한 달간 제주에서 뮐 하고 지냈나?


시간 부자도 시간이 닳기는 하더라. 난 한 달간 제주에서 뮐 하고 지냈나?

숙소를 구하자마자 내가 세웠던 제주 한달살기 버킷리스트 7가지는 다 실현되었을까?

1) 오일장에 가서 장보기

한 달 동안 제주시 오일장부터 고성과 세화오일장까지 여섯 번이나 갔으니 오일에 한 번은 장에 간 셈. 장에서 아침도 먹고 톳물김치는 세 번쯤 사다 먹었나? 가게 주인이 '제주 사람 다 됐네'라며 서비스 덤도 주심. 된장과 햇고사리, 자리횟감, 과일도 샀고 양말과 스카프, 야외활동용 버프도 구입했다.

2) 읍내 도서관에 가서 책 빌려 보기

집에서 동녁도서관이 가까웠다. 딱 한 번 맘먹고 갔는데 그날이 마침 1년에 하루인 개관기념 휴관일이었다. 이 정도면 로또 사야 하지 않나? ㅎㅎ

3) 제주 현지인들의 사는 이야기 듣기 - 아마도 숙소 주인, 식당 주인이 유력(?)

숙소 주인의 살아오신 이야기, 구좌문학회 이야기를 들었고 매년 펴낸다는 정기 문집을 선물 받았다.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의 시와 수필을 읽으니 '삶터 제주'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보였다. 놀기만 하는데도 어찌나 바쁜지 산딸기 따러 가자하셨는데 같이 못 간 게 못내 아쉽다.  

4) 해거름에 노을 진 바닷 산책하기

우리 동네 세화해변은 물론과 김녕, 하도, 조천, 종달리, 광치기해변을 해 질 녘에 가서 해지는 바다를 보거나 보말을 줍기도 하고 맨발로 모래사장 걷기도 했다. 일몰과 바다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조합이다.

5) 육지에서 건너온 지인의 관광 가이드 하기

포항에서 친구가 와서 가이드해서 같이 놀았고 마지막 주에는 아이들이 제주에 내려와 온 가족이 4박5일간 같이 돌아다녔다. 비록 맛집 선정이 성공률 60%이긴 했지만 여행 코스는 다들 만족해했다.

6) 현지인 가성비 맛집 발굴하기

제주는 식당 가기가 무서워. 기본이 1인 15,000원. 호갱된 기분이 드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합리적 가격에 맛과 자부심이 듬뿍 담긴 제주 음식을 는 감동스러운 식당도 몇 개 발견했다. 여행 마지막까지 끝내 못 먹어보고 온 고사리해장국과 몸국은 또 제주를 가야 할 미끼가 되어 주겠지.

7) 나만의 테마로 제주 여행하기 - 지질 트레일 걷기, 화산 지형 답사, 4·3 다크 투어

제주에는 지질공원이 13군데 있다. 이 중 한라산, 산방산, 용머리해안을 포함해 7개를 가 보았다. 예전에 간 걸 합하면 총 13개를 다 가본 셈이다. 또 제주의 젊은 화산 4곳, 수월봉, 송악산, 우도, 성산일출봉을 따로 체크하며 다녔다. 역시 화산쇄설물층의 단면이 신선하게 잘 드러나있어 볼만했다. 올레길은 17코스에서 21코스까지 걸었고 숲길도 챙겨 걸었다(절물자연휴양림, 교래자연휴양림, 장생의숲길, 삼다수숲길, 서귀포치유의숲, 당오름둘레길). 4·3 다크 투어는 알뜨르비행장 외엔 따로 지 못했다. 다음 기회로...


이로써 제주 버킷 리스트는 7개 중 6개 달성한 걸로 결론. 그 외 우연히 참가한 숨비소리길 투어(해녀박물관 주관, 무료)는 제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오일장 장보기와 제주 음식 만들어 먹기는 한달살기니까 가능했다. 한 달쯤 지내다 보니 구좌읍 주민센터에서 컴퓨터 자료 출력할 일도 생겼고 우체국에 제주 특산물 부치기도 했다. 나른한 주말 오후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나와 집까지 걸어오니 지역민이 된 듯 착각이 들었다. 


구좌의 내가 한 달간 지낸 곳, 제주 우리 집


괜찮았던 식당이나 음식을 추천한다면?


웨이팅 있는 소문난 맛집도 별로인 곳도 있고 이름 값하는 곳도 있었다. 우연히 현지에서 골라 들어갔는데 괜찮은 곳도 있었다. 정보가 넘쳐도 문제다. 정보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는 것도 노동이더라.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몇 군데만 소개하면,

• 추천 식당 : 기찬밥상(족발정식), 소섬바라기(갈치국외), 앞뱅디(각재기국, 멜국), 교래퐁낭(멜조림), 돌담쉼팡(보말칼국수), 어등포해녀촌(우럭튀김정식), 으뜨미식당(우럭튀김정식), 맛나식당(갈치 고등어 섞어조림), 소금바치순이네(돌문어볶음), 세화갈비(소갈비찜), 금능포구횟집(자리물회)

• 추천 먹거리 : 오메기떡, 빙떡



제주 한달살기 경비 정산(2인 기준)


숙박           108만(방2, 농가주택 94만+호텔1박 포함)
식비            95만(외식 21회, 카페 12회)
교통비         56만(주유 및 톨비 40만 + 시내버스 16만)
관람료         15만(배 승선비, 케이블카 포함)
기타(쇼핑)    18만  
제주행 배     62만(여수-제주, 사람2명+차, 왕복)
===========================================
                354만원(2인 경비)

* 추가 비용 : 손님 2박3일 + 가족여행(4박5일, 펜션+호텔 3박) = 108만원
** 실제 총비용 : 354만+108만 = 462만원    




이번 제주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제주가 화산섬이란 걸 절절이 느낀 점이다. 예전에 바닷가 현무암을 보면 막연히 한라산에서 해안까지 굴러왔나 싶었고 더 이상 생각해보지 않았다. 제주 어느 바닷가 할 것 없이 흩뿌려진 검은 돌들, 제주 밭 사이사이에 수도 없이 보이는 나트막한 용암언덕, 집담과 밭담과 무덤담을 쌓는데 들어간 엄청난 양의 현무암을 설명하려면 제주 자체가 거대한 화산섬이어야 한다.


본섬 제주가 만들어지고 시간을 두고 한라산이 분출하고 360여 개 작은 화산체 오름도 솟고 성산과 우도. 송악산과 수월봉 추가로 수성분출했다고 하니 제주는 이중 삼중 화산체를 넘어 '다중 화산체'다.

 

김녕해변에서 찍은 재미있는 사진, 어떻게 찍었을까?


난 제주를 '제주 화산'으로 부르고 싶다. 거대한 화산이면서 동시에 삶터, 문화의 보고인 지구상 가장 독특한 화산을 이만큼 가까이에 두고, 비싼 항공권 물어가며 과거 수년간 화산 찾아 삼만리-일본의 아소, 필리핀의 피나투보, 인도네시아의 브로모 화산-를 했단 말인가. 나의 제2, 제3의 제주 화산 탐험은 오름의 수만큼이나 이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설레겠지. 제주에선 저마다의 이유로 설레어도 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에서 만들어먹는 제주의 맛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