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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09. 2022

재미있는 지옥, 서울 안녕!

서울 한달살기 후기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서울사람과 시골사람. 


20대 한 때 서울에서 몇 년간 산 적이 있었다. 그 시절 쑥과 마늘로 삼칠일을 버티다가 인간으로 환생하는 곰이 나의 롤모델이었다. '서울과 서울 언저리'에 살았던 시절에 매일 피곤과 졸음에 파김치가 되어 실려 다니던 지하철 생활 몇 년만 견디면 나도 서울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서울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도시가 아니었다. 직장 문제로 서울살이 5년 만에 낙향했고 그 후 30년을 시골사람으로 살았다.


내가 서울에서 살던 시절엔 서울 지하철이 4호선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9호선까지 생겼다. 노선의 확장과 복잡함으로 치면 서울이 그때보다 5배 이상 커진 것 같다. 30년 만에 서울로 상경해 여행으로 한 달을 살아보았다. 서울은 시간도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체감속도가 다른 도시의 3배속쯤 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린 4주간의 서울 여행을 정리해본다.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서울 한달여행, 어디를 다녔나?
1) 한양도성 성곽길 걷기 -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2) 동네 산(백련산, 고은산, 매봉산, 아차산) 및 서울 둘레길(8개 코스) 걷기(10일간 완주-남편만)
3) 궁궐 투어 - 하루 궁궐 한개씩 해설투어, 5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종묘, 사직
4) 미술관&박물관 - 석파정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안중근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
5) 한성백제 유적지 - 풍납토성, 몽촌토성
6) 한강다리 걸어 건너기 - 한강대교와 노들섬, 양화대교와 선유도, 서강대교와 밤섬
7) 기타 : 부암동, 익선동, 청계천, 홍제천, 동묘벼룩시장, 광장시장, 모래내시장, 영천시장, 인왕시장
8) 경기도 : 남양주 홍유릉, 여주신륵사, 파주 헤이리


서울에서는 갈 곳 많고 만날 사람도 많다. 유서 깊은 노포도 줄줄이 갈 작정이었는데 정작 몇 군데 못 가봤다. 아마도 서울 여행이 길에서 소모되는 시간이 많아 실제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짧았던 것 같다. 또 지인과 친구를 만나느라 덜 돌아다녔다. 지금껏 한달살기로 다닌 도시 중 지인이 가장 많은 도시가 서울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방 사람들은 서울을 제외한 다른 도시와는 교류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구와 서울, 부산과 서울, 광주와 서울... 다들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을까?


영화 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사직터널 걷는 통로(왼)  성북천 주변의 오래된 한옥 마을(오)


서울 한달살기 경비 정리(25일간, 2명 기준)
숙박         60만(남가좌동 투룸, 제공과금 포함)
식비        149만
교통비       51만(자동차 월주차비 15만 포함)
관람료         6만
==================================
             266만


서울은 3월부터 이어진 한달살기 네 번째 도시였다. 체류 비용을 다른 도시와 비교해보면 부산(3월) 254만, 거제(4월) 257만, 제주(5월) 354만(순수 체류비용 292만)이니 서울도 큰 차이가 없다.


서울에서 한 달간 지냈던 남가좌동의 주택가 골목


한달살기 여행자가 주로 지출하는 식재료와 외식비에서 서울이 특별히 비싼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외식비는 밥 사 먹기가 겁날 만큼 제주와 거제가 비쌌다. 지방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액의 월 주차비'라는 복병을 만났지만 숙소비가 저렴해서 전체 경비가 절감되었다. 아들내미 대학가 자취방을 빼면서 내게 한 달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친구의 공(功)이 컸다.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 365일 24시간 러닝 머신은 돌아간다.


내 얘기를 들어준다고 한다 - 한강대교에서 -




30년 전 서울에 살 때 친구가 물었다. 언제 시골 가냐고. 뭐 대구가 시골이라고? 그런데 그 말을 서울애가 하면 참을만하다. 그 친구는 안산에 살았다. 그때만 해도 안산이 어디에 붙었는지 내겐 존재감 없는 곳이었는데 제3의 도시(30년 전만 해도 ㅎㅎ) 대구 사람인 나를 시골사람 취급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니 서울 살든 경기 살든 서울사람 정체성으로 살아가니 서울사람다. 또 그들에게 시골은 촌이 아니고, 그냥 서울이 아닌 거다. 그들의 머릿속엔 서울과 서울 아닌 곳의 공간 이분법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때도 그랬는데 지난 30년간 지방의 지역성과 개성은 빛의 속도로 소멸되어 왔고 장르 불문의 서울 집중 현상은 지금도 가속화 중이다.


서울 와서 보니 한 평에 1억씩 하는 땅을 깔고 사는 서울 사람도 사람살이는 지방과 별반 다를 게 없더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초고밀도로 모여 살다 보니 길에 시달리고 사람에게 시달리는 게 일상이라 주변에 눈 돌릴 여유가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서울과 지방의 균형은 이미 깨어졌지만 조금이라도 '기울어진 각도'를 줄일 순 없을까? 


복잡한 건 싫지만 서울은 별의별 게 다 있다. 그래서 서울은 사람들을 자꾸 끌어들인다. 아쉽지만 서울 나들이 시즌2를 기약하며 시골쥐는 이만 고향으로 돌아가련다. 지구상의 둘도 없는 재미있는 지옥, 서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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