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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30. 2022

고성 바다는 막국수를 부른다

여름 생존 음식, 막국수 / 고성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커피를 부르고 커피는 바다를 부른다. 전망 좋은 해변에 어김없이 박혀있는 카페 바다와 커피가 단짝임을 보여준다. 고성 바다는 커피가 아니라 막국수를 부른다.


바다가 막국수와 잘 어울리는 줄은 고성에 와서 처음 알았다. 고성은 카페는 멀고 막국수집은 가까운 동네다. 고성에서는 변 따라 걷다가 지치면 막국수집에 가게 된다. 냉방되는 식당에서 시원한 국물 들이키며 후루룩 막국수 한 그릇 비우고 나 굳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카페를 찾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덕분에 커피값도 굳었다. ㅎㅎ


나는 막국수를 좋아한다. 솔직히 막국수 맛을 표현할 때 흔히들 쓰는 슴슴한 맛이니 메밀향이 올라오느니 하는 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여름은 '닥치고 막국수'다.


늘 궁금했다. 냉면과 막국수의 차이점은 뭘까? 냉면과 막국수는 같은 메밀 음식이지만 면발도 식감도 음식 담김새도 다르다. 냉면은 메밀을 두번 벗긴 속 메밀에 전분을 더해 뽑는 반면 막국수는 메밀을 한 번 벗긴 겉 메밀과 속 메밀을 같이 갈고 전분을 조금 섞어 면발을 뽑는다고 한다. 막국수집에 따라 메밀 100%의 막국수를 내는 곳도 있다. 겉 메밀 함량이 높을수록 색깔이 거무틔틔하게 된다.


냉면의 원조가 이북이라면 막국수의 원조는 강원도다. 냉면은 언제부터인가 최고급 식당에서 각 잡고 앉아 먹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반면 이름조차 편안한 막국수는 가격도 식당도 더 서민적이다. 그래서인지 난 막국수집이 더 편하다. 그리고 냉면의 감질난 세면(細麵) 면발보다 막국수의 굵고 투박한 면발을 더 좋아한다. 매번 냉면은 별로이고 막국수만 찾는 이유다.


막국수의 본고장 강원도에서 한달살기를 하면서 특별한 예외가 없으면 점심은 막국수를 먹었다. 강원도 막국수도 영동 막국수, 영서 막국수, 춘천 막국수로 나뉜다고 한다. 내가 지낸 고성은 영동이니 난 영동 막국수를 먹은 거네. 그래도 고성이 영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으니 고성 막국수에 국한해 이야기해보겠다.


경상도 출신인 내게 강원도 고성 막국수는 무엇이 달랐나? 아니 무엇이 좋았나?


첫째 고성에서는 막국수 메뉴판 앞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평소 '한 결단력 한다'는 소리를 듣는 나는 막국수 메뉴판 앞에만 앉으면 결정장애에 빠진다. 물막국수를 먹을까? 비빔막국수를 먹을까?


다행스럽게도, 고성 막국수 식당에서는 내게 물어오지 않았다. 메뉴판조차 물막국수과 비빔막국수의 구별이 없다. 그냥 막국수뿐이다. 자리에 앉자 사람 수대로 면과 동치미 국물, 다대기 양념을 따로 접시에 담아 내온다. 면 따로, 면수 따로, 양념 따로다.


비벼먹든 물에 말아먹든 입맛대로다. 처음에는 비빔으로 나중에는 동치미물을 부어 '비막+물막'의 조합으로 응용해 먹어도 된다. 들기름과 간장만 넣고 들기름 막국수를 시도해봐도 된다. 이것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우리 동네 막국수집에서도 좀 벤치마킹하면 안 되나?


고성에서 먹은 막국수 한 상(1인분 9,000원)


둘째, 고성에서는 막국수에 시키지도 않은 명태식해 한 접시가 따라 나왔다. 고성이 명태잡이항으로 번성했던 곳이라서 그런지 명태 가공을 많이 하고 명태 요리가 흔하고 명태 인심이 좋나 보다. 명태가 결코 저렴한 생선이 아닌데 빨간 고추장으로 무친 명태식해는 고물가 시대에 황송하기까지 하다. 막국수에 고명으로 얹어 먹어도 되고 물막국수에 찬으로 곁들여 먹어도 좋다. 수육을 같이 시킨다면 돼지고기에 명태식해 한 점을 얹어 백김치에 싸서 삼합을 만들어먹으면 또 색다른 맛이다.


고성 막국수는 겉 메밀을 많이 섞어 유난히 검은 빛깔을 띄어 고성 사람들 스스로가 토면(土麵)이라고 한다고 한다. 거친 식감의 면과 알싸한 동치미 국물, 콤콤하게 익은 백김치와 열무김치, 명태식해로 차려 나오는 게 특징이었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 없으니 명태식해나 백김치가 안 나오는 식당도 더러 있었다.


난 때로 내가 항온 동물이 맞는지 의심한다. 조금만 더우면 찬 음식을 찾고 조금만 서늘하면 뜨거운 음식을 찾는다. 막국수는 내게 여름의 별미 음식이 아니라 주식이고, 여름을 나는 생존 음식이다.


고성에서 보낸 한 달은 막국수로 기억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고성에서 가장 많이 한 활동이 '막국수 사먹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고도 강릉과 속초, 동해, 삼척, 태백을 거쳐 대구 집으로 돌아오는 2박 3일 귀가 여행길에서도 막국수집만 찾아다녔다. 누가 보면 강원도 막국수 프로젝트라도 하는 줄. 아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진짜로 '막국수 탐사대' 한 번 해볼까? '영동, 영서, 춘천 막국수의 공통점과 차별점'이란 주제로. 벌써부터 그리운 고성 막국수도 포함해서.

 



※ 고성의 괜찮았던 막국수 식당 세 곳

1) 백촌막국수 : 고성 막국수의 교본 같은 곳. 전국적으로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시골 마을 안에 있고 웨이팅이 어마어마함. 10시반-5시까지 영업. 여름철 성수기엔 평일 오후3시에도 웨이팅 최소 1시간. 웨이팅 안 하려면 10시반에 가거나 오후4시에 가거나. 전체적으로 좀 달고 면발이 가는 것 빼고는 대체로 만족.

2) 교암막국수 : 백촌막국수 가는 길목에 있음. 백촌막국수에 갔다가 웨이팅 하기 싫어 대체 식당으로 가게 된 집. 백김치와 열무김치를 셀프바로 운영해서 양껏 가져다 먹을 수 있어 좋았음.

3) 송지호막국수 : 명태식해와 백김치는 안 나오지만 면발이 굵고 씹히는 맛이 좋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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