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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24. 2022

갇힌바다와 열린바다가 나란히, 경포호에서 화진포호까지

동해안 석호 여행 / 고성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호수보다 강을 더 좋아한다. 강보다 바다를 더 좋아한다. 바다는 탁 트여 좋고 그 너머가 안 보이는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다. 그러나 막상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생각은 커녕 멍 때리게 된다. '태양계 안의 어떤 천체에도 물 한 방울 없다는데 내 앞의 저 많은 물은 어디서 났을까?' 경이롭다.


파도 넘실거리며 아득히 펼쳐진 바다 수평선은 보는 이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탁월한 효능을 가졌다. 그런데 바다가 육지에 갇히는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동해 북부에서 발견되는 석호(潟湖)가 그렇게 만들어진 호수다. 강릉의 경포호, 속초의 청초호와 영랑호, 고성의 송지호와 화진포호 원래 바다였던 곳이다.    

                                                               

동해안의 대표적 석호(원지도 출처 : ebs 지식클립)


바닷물은 어떻게 해서 갇혔을까? 동해안의 해발고도가 낮은 곳 사이로 바닷물이 치고 들어와 만(灣)이 형성된다. 이후 하천이 운반해온 모래가 파랑과 조류의 작용으로 해안에 둑 모양으로 사주(沙洲 모래사장)를 쌓게 된다. 사주가 성장해 모래톱 모양이 되어 만의 입구를 막아버린다. 만을 막을 만큼 넉넉한 퇴적물의 공급은 강릉과 속초, 고성 서쪽의 배후 산들이 맡았으리라. 이렇게 바닷물이 육지 퇴적물에 갇혀 호수가 된 것을 석호라고 한다.


석호는 육지 태생의 담수호보다 염도가 높고 겨울에는 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수와 담수가 섞여 바다 물고기와 민물 물고기가 공존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후 습지와 늪을 거쳐 육지로 변해갈 운명이다.


석호는 바다의 일부가 갇힌 곳이니 바다 옆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릉부터 고성까지 갇힌 바다 석호를 따라가면 태평양까지 장된 열린 바다 동해 해변과 나란히 가게 된다. 공교롭게도 세 도시 모두 석호 주변에 도시의 대표 명소들이 모여 있어 이보다 더 효율적인 여행 코스도 없다. 이렇게 해서 강릉 경포호부터 시작해 7번 국도 따라 속초 청초호, 고성의 화진포호까지 다녀왔다.



강릉 경포호에서 초두부 한 그릇


강릉이 어디쯤인지 모르는 사람도 강릉 경포대는 들어봤을 것이다. 경포호에 가니 바닷물이 갇혀 된 호수인지 그냥 일반적인 담수호인지 구분이 전혀 안 갔다. 그래도 태생이 다르니 내 마음속에서나마 경포호를 다른 격으로 대해준다.


경포호 숲길 따라


경포호는 여행 자산을 많이 품고 있었다. 포호를 돌다가 오죽헌과 허난설헌의 생가를 들렀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나이며 여류 문학가인 허난설헌은 당대 허씨 집안의 5대 문장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의 호 초당에서 따온 초당마을에 들러 이름만 들어봤던 진짜 '초당 초(初)두부(=순두부)'를 먹었다. 몽글몽글 구름처럼 핀 하얀 초두부를 갓지은 강릉쌀밥과 함께 먹으니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영혼까지 데워줬다.


초두부는 첫두부이고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순두부와 같은 말이다. 강릉쌀밥과 초두부 한 상


경포호 옆은 솔숲이 멋진 경포해변, 강문해변, 송정해변이 안목해변까지 굴곡 없이 일자로 끝없이 늘어져 있어 사람들이 왜 강릉으로 모여드는지 이해되었다. 강릉여행 마무리는 어김없이 안목 해변의 커피였다.



속초 청초호, 아바이 마을과 어마이, 갯배 타기

속초항과 붙은 청초호는 번잡했고 원도심의 중심이라 사람 냄새로 가득했다. 1.4후퇴 때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피난왔던 이북사람들이 모래사장이나 다름없는 곳에 임시로 정착했다가 실향민으로 살게 됐다는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힘겨웠던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북식 아바이순대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음식이었다. 마이 간판을 보고 '마이'가 아바이의 짝말인 줄 처음 알았다. 산업유산이 된 칠성 조선소도 청초호 뷰의 카페를 품고 있어서 이미 핫플이었다.


청호동 아바이 마을


'아마이'는 처음이라~


속초 청초호의 진정한 명물은 단돈 500원 내고 타는 갯배였다. 무동력 배로 밧줄을 긁어 속초항과 청초호 경계의 좁은 바닷물을 건너게 해주는데 몇 만 원짜리 해상 케이블카를 탄 것보다 더 기억에 남았다. 속초의 전통적인 수상 이동 수단을 재현한 속초다움 때문이 아닐까?


속초에 갯배 타러 오세요~


갇힌 바다와 열린 바다가 나란히, 고성 화진포호


화진포호는 바다와 연결된 청초호나 경포호와 달리 바다로부터 완전히 막혀있다. 또 청초호, 영랑호, 경포호가 서쪽으로부터 하천수가 흘러드는 반면 화진포호는 주변에서 유입되는 담수가 전혀 없다. 바다와 육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석호인 셈이다. 바다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 석호와 해변이 카메라의 한 앵글에 사이좋게 잡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응봉에서 본 화진포호(왼)와 화진포해변(오)


김일성별장에서 바라본 화진포해변


이곳을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은 응봉에 올라 화진포호와 화진포해변을 동시에 감상하는 것이다. 응봉까지 오르지 못한다면 김일성별장 뒤 솔숲 언덕을 올라 주변을 조망해보길 바란다. 화진포호 주변은 일제 강점기 때 원산 대신 대체 휴양지로 낙점되어 서양 선교사들의 휴양촌이 들어섰고 김일성별장에 이승만별장과 이기붕별장까지 있으니 가히 검증받은 휴양지라 하겠다.




얼마 전 지구 사막화와 폭염의 기후 재앙으로부터 안전한 국내 도피처를 소개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동해안의 강릉, 속초, 고성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은 고위도대라 여름철 평균 기온이 높지 않은 데다가 쿠로시오 한류가 찾아와 여름 바다를 식혀주고 겨울에는 태백산맥이 북서풍을 막아주는 곳이다. 그래서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에 덜 추운 유럽의 서안해양성기후와 비슷한 기후 조건을 가졌다는 것이다.


교통과 편의시설 등 도시 인프라가 우리나라 소도시 어디든 잘 구축되어 있으니 이젠 기후가 경쟁력인 시대다. 그래도 내 발로 직접 가봐야 하지 않을까? 석호와 바다가 공존하는 곳, 갇힌 바다와 열린 바다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 기후 위기 피신지 검증 삼아 강릉에서 고성까지 동해안 석호 여행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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