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비, 항저우 맑음!
개기일식 보러 상하이로 떠난 해외여행 초짜 우리 모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동방항공의 안전비행 덕에 무사히 상하이에 도착했고, 숙소도 잘 찾아갔고, 끼니때마다 밥도 잘 사먹으며 그렇게 상하이 시내를 이틀간 잘도 돌아다녔다. 마치 해외여행 쫌 해본 사람처럼. '난생 처음 외국'이었지만 가이드북으로 '사전 시뮬레이션 학습'을 얼마나 철저히 했던지 현지에 가서 하니 그대로 다 되더라~
공항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타고 돌아다녔다. 상하이 여행 필수 코스인 상하이 박물관, 위위옌(예원), 난징루 보행가와 와이탄을 찍었음은 물론,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격인 '상하이의 동방명주'도 놓치지 않았다. 비록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계획에도 없던, 이름도 첨 들어본 주가각까지 버스 타고 다녀왔으니 '여행 근자감' 만땅이었다.
딱 하루 지나니 중국이 만만해졌다. 거리에서 들리는 말만 중국말이지 우리나라 사람이랑 동질적 외모라 내가 입만 벙긋하지 않으면 외국인 티도 안나니 익명의 마력이 있었다. 빌딩과 도로며 버스와 지하철 시스템 다 비슷하고, 식당있고 호텔 있고, 외국이라고 특별한 것도 없더라. 다 사람사는 세상. ㅎㅎ.
내가 중국 간다니까 주변에서 저마다 한소절씩 늘어놓던 중국 엽기 시리즈의 주인공, 내 장기를 빼갈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중국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내 지갑을 노릴것같은 불량스런 사람도 하나도 못보았다. 오히려 내가 마주친 숱한 중국인은 딴덴 관심없다는 듯 제 갈길 열심히 가는 쉬크한 상하이 생활인과, 시끌벅적 들떠있는 중국 촌사람들 내국인 관광객들이었다. 난징루 보행가에선 거의 떠밀리다시피하며 중국 사람 구경을 여한없이 했다. 휴가시즌이랑 겹친 개기일식 때문에 내국인은 물론 서양관광객까지 넘쳐나 상하이는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상하이에 2박을 하고 셋째날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우린 상하이보다 항저우가 개기일식 관측 최적지란 사전 정보를 입수한 터였고 기차표는 상하이의 한인민박사장을 통해 예매했다. 이때만해도 사람이 기차역이나 기차표 대행점에 직접 가야 기차표를 끊을 수 있었으므로 외국여행자는 대행수수료를 주고 인편에 기차표를 구할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인터넷 예매하는 세상이니 어느새 이것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항저우로 가는 기차 안에서 생수 한병을 공짜로 줬고, 열차내에서 제공되는 뜨거운물로 컵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컵라면 없는 중국 기차여행은 앙코없는 찐빵아닌가! 그렇게 도착한 항저우에서 여행 나흘째날, 바야흐로 D-day를 맞았다. 그날은 개기일식날. 7월22일 9시반경에 개기일식이 예정되어 있고 영은사 근처에서 관측할 계획이었다.
개기일식 시각까지 영은사에 도착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아침부터 마음이 부산했다.
아침 먹을 식당을 찾는 번거로움과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숙소에서 시켜 먹기로 한게 오히려 시간 차질을 가져왔다. 무슨 이윤지 몰라도 카운터 직원과 주방 직원이 아침부터 서로 신경전이더니, 오믈렛 2인분이 나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때 주문 취소하고 박차고 나왔어야 하나? 세기의 우주쇼 아니 500년만의 우주쇼 개기일식을 앞두고 그깟 오믈렛에 발목이 잡히다니...
아침을 먹고 나서니 8시 40분이다. 개기일식 시각까지 1시간이 채 안남았다. 숙소를 나와 버스를 타러 가다보니 사관로 근처 공터에서 카메라 삼각대를 세우고 개기일식 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창 버스를 타고 영은비래봉가는 도중, 서호 근처 쯤 오니 하늘이 갑자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앗 개기일식이 시작된 거다. 이런, 버스에서 도중에 내릴 수도 없고, 버스에서 개기일식을 맞아야만 했다.
영은비래봉 주차장에 오니 하늘이 거의 어두워져 있다. 10시 30분이 넘었다. 달이 태양을 가리니, 낮을 밝혀줄 광원이 없어졌다. 대낮이 순간 밤으로 변해버렸다. 빌딩엔 전등이 켜지고, 거리엔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고 택시들은 전조등을 켰다.
아, 지금은 낮인가? 밤인가? 지금 나의 신발이 닿아 있는 지구의 땅조각이 태양을 향하고 있으니 천문학적으론 엄연한 낮이요. 해가 없어 하늘이 깜깜하니 일상학적으론 밤이다.
그렇게 낮과 밤의 정의론에 헷갈려하고 있을 무렵 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워지자 하늘에 뭔가가 또 나타나 한번더 사람을 놀라게했다. 태양 주변의 윤곽이 드러났다. 달이 태양 표면을 가리니 평소엔 안보이던 태양의 대기, 정확히 말해 태양 코로나가 나타난 것이었다. 깜깜한 하늘에 고리 모양의 태양 코로나만이 태양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 5분?
다시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 아까 어두워지기 전의 일상의 하늘로 되돌아오는 게 아닌가?
'한낮에 갑자기 밤이 찾아왔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린 순간엔 깜깜한 하늘 높이 태양 대기가 깜짝 등장했다. 다시 이 과정이 역순으로 진행되며 원래의 하늘로 되돌아갔다' 정말 하늘의 신기였다. 일식 내내 딸아이랑 둘이 정신없이 환호하며 이날의 엄청난 사건을 만끽했다. 하늘이 만들어준 최고의 이벤트, 내 생애 이런 개기일식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날씨가 맑아줄까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더니 최상의 조건에서 개기일식 쇼가 진행된 것이다. 다음날 상하이로 돌아와서 들었지만 이날 상하이는 비가 왔다고 한다. 개기일식날 날씨가 '상하이 비, 항저우 맑음'이었으니 선택지로서 '상하이 패, 항저우 승'이었다.
개기일식 보러간 우리 모녀는 그날 그순간 항저우에 있었고, 날씨가 받쳐주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야만 보는 개기일식을 마침내 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