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트립 Jul 05. 2021

내가 배워주리라, 중국어

단어 한개가 이끈 중국어 공부

생애 첫 외국행 비행기로 중국 상하이 푸동공항에 내렸다. 나의 여행시나리오에 의하면 내가 취해야할 다음 포지션은 공항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인민광장 부근으로 가는 것이 중국땅에서의 첫미션이었다.


어찌어찌해서 공항버스를 타고 요금도 냈고 내리라는 곳에 잘 내렸다. 공항버스에 함께 탔던 중국인들도 나와 같은 곳에서 내렸다. 저들 무리만 따라가면 지하철 타는 곳인 룽양루지하철역까지 가겠지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푸동공항에서 룽양루지하철역 부근까지 가는 공항버스. 10년도 전(前)이다. 요즘은 이런 구닥다리 공항버스 없을걸?


공항버스를 내려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그많던 중국인들이 삽시간에 사라지고만 것이다. 게다가 우리 모녀가 내린 곳은 시외곽의 공터였고 허허벌판이었다. 지하철 입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번화한 거리는 커녕 길물어볼만한 사람도 마주치기 어려웠다. 아니 이거 사람많기로 소문난 중국의 배신이다. 난 그때 알았다. 자유여행자의 가장 큰 비애는 '낯선땅에서 어디로 갈지 모를 때' 온다는 것을.


어쩌다 사람이 눈에 띄면 쫓아가서 물었다. "훼얼 이즈 서브웨이스테이션?" 다들 놀라 손사래를 친다. 못알아듣는 것이었다. 이날 그 지점에서 만난 사람은 하나같이 나의 애닯은 영어 한마디를 못알아들었다. 아무나 붙들고 무작정 물어보는데서 작전을 바꿔 젊은 사람을 공략하기로 했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양산을 쓰고 가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기대했던 아가씨도 영어 한마디를 못알아듣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 아가씨의 표정이 너무 절실했다. 고맙게도 나만큼이나. 도와주고싶어 죽겠다는, 그런데 못알아들어 너무 안타깝다는 얼굴이었다. 


서로의 간절함이 통한 걸까? 갑자기 내 입에서 "띠티에쫜(지하철역)?"가 튀어나왔다. 중국어라곤 여행전 초급회화책 10과까지 휘리릭 읽어보고간 게 다였다. 그런데 내 속에 잠재된 단어 띠티에쫜 한개가 절대절명의 순간에 뇌의 명령체계를 따라 입밖으로 내뱉어진 것이었다. 그 아가씨도 나도 서로 뛸듯이 기뻐하며 아가씨가 가르키는 손가락 방향을 좇아 지하철역을 무사히 찾아갔다. "소통의 간절함, 소통의 기쁨이 이런거였구나."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지하철역 입구, 마침내 지하철을 타고 인민광장으로 가는 중


사실 그때 이후 상하이에서 4박5일간 영어만 쓰면서 여행하는데 별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시내에서 만나는 세련된 차림의 젊은 상하이 사람들은 영어로 물으면 잘 가르쳐주었고 식당과 호텔은 더더욱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난 나를 살린 중국어 한마디, '띠티에쫜'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4박5일 중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중년의 한국 아줌마는 결심한다. "앞으로 나의 남은 생애동안 중국여행 실컷하며 살리라." 중국 인민들의 영어 역량이 높아질 때까지 어느 천년에 기다리랴. "그래. 내가 배워주리라, 중국어."


한국으로 오자마자 시작된 나의 중국어 공부는 '중국여행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강한 동기 덕분에 탄력이 제대로 붙었다. 순식간에 HSK 4급까지 땄다. 갓 익힌 따끈따끈한 중국어로 실습하며 여행하는 재미로 10여년간 중국을 뻔질나게도 드나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개기일식을 봤다는 거야? 못봤다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