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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Oct 27. 2021

만개의 봉우리에 유채꽃은 덤, 싱이의 만봉림

나의 ‘쓰촨·윈난 한 달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싱이(兴义 흥의)였다. 윈난성 쿤밍에서 성(省)의 경계를 넘어 구이저우성 싱이 까지 간 이유는 만봉림(万峰林 완펑린)과 마령하 협곡(마링허 샤구)을 보기 위해서였다.

      

싱이(兴义)는 구이저우성 서쪽 끝이라 쿤밍에서 가기 괜찮은 편이다.


두 곳 모두 싱이 시내에서 시내버스로 간다는 정보만 철떡 같이 믿고 갔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 했던가 길에서 만난 공안에게 물었더니 만봉림 가는 버스는 우체국 앞에서 타라고 적어 준다. 중국 공안한테 말을 다 걸고 중국이 만만해졌나 보다. 공안이 가르쳐준 대로 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니 만봉림이다. 모처럼 차장 눈치도, 누구에게 물어볼까 다른 손님 눈치도 볼 필요도 없이, 버스 설 때마다 정류장 이름 기웃거릴 필요도 없이 마치 내가 현지인인 것처럼 당당히 내렸다.


싱이의 중국 공안, 대한민국 경찰만큼 친절합니다. 만봉림은 시내버스로 가니 접근성 최고다.

    



만봉림에 들어서니 나지막한 원뿔 봉우리들이 평지에 수도 없이 봉긋봉긋 솟아 있다. 개수가 많다 보니 겹겹이 중첩되어 펼쳐진 실루엣이 환상적이다.




버스 종점 부근에 만봉림 봉우리의 자연 동굴을 이용한 절, 만불사가 있었다. 이곳에서 싱이 아가씨 둘을 만났다. 그들은 향을 사서 정성스레 기도를 올린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환호성을 지르며 마치 한류스타라도 만난 양 격하게 환대했다. 아가씨 둘의 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혀줬다. 중국 시골 마을에서 연예인 체험을 다하다니. 문화강국의 국민은 해외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 ㅎㅎ




만불사와 만봉림 근처도 죄다 유채밭이다. 유채꽃도 예쁘고 봉우리도 예쁘다. 눈가는대로 사진을 막 찍다 보니 내가 유채꽃을 보러 왔는지 봉우리를 보러 왔는지 헷갈렸다. 어떤 사진은 봉우리가 주인공이고 어떤 사진은 유채꽃이 주인공이다. 누가 주인공이면 어떠하리. 함께 있어 예쁘면 다 용서가 된다.


어렸을 적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이곳 만봉림은 봉우리 개수가 만 3천여 개라고 하니 “만봉림 찾아가자 일만 삼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행여 내가 이 만봉림 전경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 있다 해도 만개 아니라 천 개 아니 백 개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상상해보라. 원추형의 실루엣을 가진 비슷비슷한 볼륨의 봉우리 만여 개가 연속적으로 펼쳐져 있는 광경을. 모습은 어찌 상상했다 쳐도 면적이 서울시 면적의 3배가 넘는 2,000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니 가늠이나 될까. 여행자가 보는 것은 만봉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곳으로 부이족 마을과 유채밭이 어우러진 서봉림 일대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봉림까지 포함해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만 200km에 이른다.

     

다 석회암 봉우리들이니 이곳이 옛날에 바다 밑이었다는 얘기가 되면 이젠 더 이상 믿기지도 않고 신비롭기만 하다. 석회암이 오랜 시간에 걸쳐 녹아 만든 카르스트는 특이하고도 아름다운 지형을 많이 만들어낸다. 기묘한 석회 동굴부터 계단식 지형, 뾰족뾰족 돌의 숲, 그리고 원추형의 봉우리 지형까지.


이런 봉우리들이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져 중국인의 눈을 홀린 곳이 구이린이요. 내륙의 노란 유채꽃과 환상 케미를 만들어 내는 곳이 이곳 만봉림이다. 윈난의 뤄핑도 이곳과 비슷한 경치이나 뤄핑이 유채밭이 더 주목받는 곳이라면 만봉림은 봉우리 경치가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만봉림 일대에 사는 소수민족 부이족 마을


초상난 집과 조문객들의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


오늘 이집 반찬은 유채나물볶음이렷다~


소수민족 부이족의 하얀 삼층집들도 그림 같기만 하다. 유채밭 사이로 탐방길이 어딘지도 모른 채 자전거 바퀴가 가는 대로 누비다 보니 부이족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엿보게 된다. 도랑에서 유채를 씻는 아낙네의 저녁상에는 유채 반찬이 오르겠지. 상(喪)을 당한 집도 하나 보았다. 조문객을 대접하려는지 큰 가마솥을 뜰에 내어놓고 여럿이 두부를 끓이고 있었다. 유채꽃 흐드러진 봉우리도 멋있지만 그 봉우리 사이사이에 사람이 살고 있어 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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