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과 가면 - 존재의 감각 시리즈

이불 : 나 여기 있어요

by 나소

이 글은 죽음과 선택에 대한 상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읽는 중 불편함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실제 행동을 권유하지 않으며,

삶을 선택하는 경계에서의 감각을 다룬 서사입니다.




‘싸게 죽여드립니다.’ 간판에 적혀 있는 글씨. 사람들은 못 본 척 지나가지만 날로 더 화려해지는 간판. 간판에 쓰여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고 예약날짜를 잡는다.


예약날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마치 쾌락의 나라 같았다. 죽기 전에 모든 억압된 것들을 풀어버리 듯 사람들은 몸을 녹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고고함을 잃지 않는 후회쟁이들이 있었다. 후회쟁이들과는 다른 그렇다고 쾌락에 몸을 내몰지 않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람들은 조용히 그림들을 감상했다. 여행 가방을 싸고 풀었다. 그것들만 있었어도 자신이 여기에 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나도 이미 약속값을 지불해서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들어왔는지 이유를 몰랐다. 나는 쾌락의 방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 불안해하며 빠른 심장을 부여잡고 어찌할 바를 몰라 심장을 놓쳐버렸다.


난 죽고 싶었지만 의식을 놓고 싶지 않았다.


다시 천천히 둘러보았다. 명화들이 있는 방이 있었다. 그곳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클림트의 키스가 있었다. 이 그림 앞에 발 닿을 수 있을까 했는데 죽기 전 딱 간당간당한 순간 절벽 너머 전 찰나의 순간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 떠올랐다. 난 동경해서 죽으려고 했다. 이런 삶과 사랑을 갖지 못해서 감히 꿈꾸다 무너져 버릴까 죽기로 했다. 무너질 바에 죽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다.

난 이제 돌아가지도 못한다. 이미 이곳에 내려고 큰 빚을 졌다. 나에게도 안 하는 약속을 했다. 난 이제 저쪽에서 부르는 시간에 맞춰 죽어야 한다. 죽는 것도 번호표가 붙는다. 너무 바빠 죽여줄 수 없으니 잠시 대기하라고 했다. 대기실은 최고급이니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가버렸다. 평화롭다고 생각한 그 시절이 생각나 돌아가볼까 했지만 부질없다 생각했다. 사실 예전부터 미래를 꿈꾼 적은 없다. 그 사람은 나와 아이를 낳고 오손도손 사는 걸 꿈꾸는 것 같았지만 그저 반대하지 않았을 뿐 동조한 적도 없다. 그렇게 마음의 요동이 없던 어느 날 인생을 의미 없이 연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한 가지의 일에만 몰두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고 머리로 이유를 채웠다. 필요한 이유를 만들기도 했다. 옳은 일이란 것을 믿기 시작하니 끝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뤄냈다. 그게 옳은 건지 옳은 일을 하는 건지는 몰랐다. 한 번도 신에 맞서 진적이 없었다. 혼란에 흔들린 적 없었다. 그렇게 무너져가고 있는 걸 몰랐다.


113번 번호가 떴다. 이제 간다.


앞의 사람이 놓고 간 슬리퍼는 살짝 눌려있었다. 뒤꿈치가 조금 더 눌려있었다. 잠시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조그만 할머니가 다가온다. “다시 돌아갈 길에는 저 사람들의 노고가 드니 돈을 더 내셔야 해요.” 나는 돌아간다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렇게 길을 안내받았다. 슬리퍼는 신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꾸 흘끔거렸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 들어온 후로 말을 하는 것이 귀찮아져서 신경을 멈췄다.

할머니는 길을 멈췄다.

다시 갔다.

다시 멈춘다.


걷는 것도 느리니 자주 발에 닿을 뻔했다.


그리고는 멈춘다.

나는 다시 가는 리듬을 맞추려고 기다렸다.

근데 할머니는 변주를 준다. 나를 돌아본다.



“왜 죽어요?”



나는 오늘 112번 동안 그 말을 수줍게 물어봤을 할머니를 생각했다.

“돈은 받으시고 하시는 거예요?”

난 되물었다. 할머니는 다시 앞을 보고 방 문을 열었다.


대기실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이불 하나에 쪽지 하나가 있었다. 이불에 들어갔다. 그곳에 누우며 ‘돈은 쾌락의 방에만 쓰는 건가?’, ‘이불에 질식사하는 건가?‘ 생각한다. “쪽지를 열면 의식 거행인 건가” 쪽지에는 ’ 재미있게 ‘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재미있게..”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알겠다는 듯이 일어섰다. 나간다. 나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아보았다. 살기 싫어서 죽음을 택했는데 죽기 싫으면 무슨 선택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 이불로 질식사하는 상상을 한다. “재미있게” 아무리 떠올려봐도 재미있는 죽음을 상상이 안된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재미있는 죽음은 상상해 본 적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것 같은데 재미도 죽음도 없었다. 나는 굶기고 지루하게 해서 죽이나 보다 생각한다. 다시 쪽지를 핀다. 아무 말도 적혀있지 않다. 무언가 있다. 이것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 “할머니는 어디 간 거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작게 얘기한다. “저 여기 있어요” 아무런 메아리도 없다. “저 여기 있습니다” 아무런 잡음이 없다. 쪽지를 들고 일어선다. 방문을 여니 캄캄함이 눈을 뜨고 있다. 무서워서 얼른 문을 닫았다. 죽음보다 어둠이 더 무섭다. 쪽지는 엉망진창으로 볼펜자국이 나 있었다. 수많은 다시 씀이 있었다. 숨이 막혔다. 이불에 눕는다. 눈을 감고 쪽지를 떠올린다. 어둠이 눈을 뜬다. 난 다시 무서워 눈을 뜬다.


“나 여기 있어요”…… “재미있게”


눈물이 났다. 그 말 끝에 서린 시간들에 눈물이 났다.


13살에 봤던 할머니의 웃음, 부끄럼, 내향적이던 할머니가 “저기 앞 집에 감 좀 주고 와”라며 심부름시키던 시간


“왜 울어?”라고 묻던 그 말투와


“왜 죽어요?”라고 묻던 조심스러움이 떠올랐다.


뻐꾸기가 나오기만 하고 울지 않던 어느 날 할머니가 말했다. “저 봐라 뻐꾸기도 안 우는데 너는 왜 울어?” 나는 왜 울었지. 왜 울었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그때의 서러움이 있었을 텐데 분명 서러웠을 텐데 이유 없이 울지 않았을 텐데 할머니는 웃는다. “모르겠지?” 나는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른다. 나는 13살이니까 이유 모를 눈물이 나는 게 어색한 나이는 아니다. 눈물이 미안한 나이도 아니니까 막 운다. 이때다 싶어 울음을 터뜨린다. 담배하나 입에 문 할머니는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 찬장에서 라면을 꺼낸다. “이거 먹을까?” 아 라면이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이유 찾았다. 할머니는 계란 넣고 파 넣은 불은 라면을 유리그릇에 굳이 옮긴다. 유리그릇 하나 더 찬장 깊은 곳에서 꺼낸다. 할머니 허리가 꼿꼿해지는 유일한 순간이다. 아빠 없이 우리 둘만 아니 나만 먹는다. 한 가닥 드시고는 나만 본다. 후식은 찬장으로 기어가시고 커피맛 사탕을 꺼내온다.


2개.


1개는 적고 3개는 이가 썩으니까 줄 수 있는 사랑의 최대치 2개를 쥐여준다.

할머니는 이불 끝에 날아가듯이 앉아있다. 왜 이불 끝에만 있는지 모르겠다.

이불속은 안 들어오시고 이불 끝만 자리인 양 있다.


이제 내 이불속은 뜨겁다. 열이 난다. 이불속에 파고든다. 쪽지는 사탕껍질이 되어 구겨졌다. “나 여기 있어요 재미있게” 이불 끝이 더 깊숙이 파인다. 슬리퍼는 신지 않았다. 이불이 아래로 아래로 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