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뤠?”에서 고민하고, “BRUNCH”에서 다시 엮다
몇 년 전 재외한국학교에서 근무했다. 사립도 아닌 국공립도 아닌, 정체성이 약간 모호한 그곳은 학교 운영이나 행정이 한국만큼 체계적이거나 안정적이지 않았지만 교사만큼은 내가 교직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최고였다. 이곳의 교사들은 한국 각지에서 모인데다가 모험심과 도전 정신, 열정이 큰 사람들이었다. 물론 각자가 지닌 개성도 강했다.
이런 동료들은 나에게 큰 에너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동료 교사들과 학교 운영,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눌수록 긍정적인 힘이 생겼다. 이들과 함께 힘을 모으면 학교에서 단순히 수업만 하는 교사가 아니라 학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민주적이고 건강하게 학교를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2020년, 몇몇 동료교사와 함께 학교 공동체와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이를 학교 교사 소식지로 만들어 배포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교사 소식지 “아!고뤠?(이하 아고뤠)”가 창간되었다. 처음 아고뤠 편집부는 3명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7명까지 늘었고, 편집부 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호응하고 지면을 채워주셨다. 그래서 4~10쪽 분량의 소식지를 첫해는 매주, 둘째 해는 격주로 작성하여 학교 메신저로 보냈다.
아고뤠를 발간하는 동안 편집부는 매주 모여 1~2시간 정도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교육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글 주제를 정했고, 각자 자신의 경험과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완성된 글은 다시 편집부 동료 교사들과 함께 돌려보았고, 동료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정을 하였다. 기고자의 글은 오탈자만 교정을 했다.
소식지를 꾸준히 내는 것, 그것도 의견이 든 글을 써서 배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글은 잘 쓰면 약초가 되지만, 잘못 쓰면 독초가 되기 때문이다. 아고뤠가 동료 교사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오해와 화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자판을 두드리는 마음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다. 단어 하나를 두고 몇 번이나 고치기도 했고 발간하기 전에 다른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고뤠에서 글을 쓰는 일은 좋았다. 우선 나의 교직 생활을 돌아볼 수 있었고,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열정 많았던 신규 교사 시절 수업을 통해 뿌듯함을 느꼈던 경험, 동료 선생님들과 학교 문화를 개선했던 경험, 학교 부조리에 울분했던 경험, 정치질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라떼를 좋아하는 나의 모습도(나 때는 말이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타인과 주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워했던 선배 교사를 덜 미워하게 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교장 선생님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때론 무기력하고 때론 난폭한 학생들과 어떻게 친해질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고뤠는 학교 공동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답답했던 일을 털어놓고 공감과 위로를 받는 장이 되기도 했고, 학교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도록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가끔은 아고뤠에서 던진 화두가 공론화되고 학교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해서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아쉽게도 아고뤠 발간을 함께 했던 편집부 동료 교사 대부분이 한국으로 귀임을 했다. 학교 메신저로 마지막 호와 함께 인사를 전하고 2년 간 발간했던 교사 소식지 아고뤠는 끝이 났다.
아고뤠 편집부 해단식을 하던 날, 그동안 동료들과 나눴던 교육에 대한 고민들을 그대로 묻어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식당 앞에서 서성이다 결국 다시 모임을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매주 1회 온라인에서 모여 교육과 관련된 주제를 정해 2시간 정도 토의를 하고 각자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들이 모여 브런치 계정이 시작되었다.
* 이 브런치의 글들은 재외한국학교에서 교사 소식지 “아!고뤠?”를 발간했던 편집부 선생님들이 함께 작성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서로 엇갈린 견해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