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면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교민들 중 현지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극히 소수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현지어를 배우는 학생들조차도 현지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비율이 아니,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는 수준의 학생들이 많지 않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한국에서 이 나라의 위상이 높아져 가고 있고 양국 간 무역 규모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나라 언어를 배우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가진 우리학교 학생들이 왜 현지어를 잘하지 못할까? 오늘은 우리학교의 현지어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1. 현지어에 대한 인식과 교민사회
베트남어 교육에 방해되는 첫 번째 장애물은 현지어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다. 학생들에게 현지어를 왜 공부하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답변은 어려워서이다. 하지만 모든 공부는 어렵고, 학생들이 배우는 또다른 외국어인 영어 역시 쉬운 건 아니다. 어려운 과제는 오히려 강한 동기를 자극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어렵다고 말하고 쉽게 포기하는 이면에는 현지어를 굳이 극복하고 공부할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건 부끄러워하면서도 이곳 언어를 잘 못하는 것은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또한 교민사회가 커지면서 각종 한국 편의 시설이 증가하고 있는 점도 현지어의 필요성을 감소시킨다. 우리는 중화, 미딩을 가면 현지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음식을 시키고 물건을 살 수 있으며, 집에서 편하게 한국말로 각종 배달을 시킬 수 있다. 우리 삶에 필요한 대다수의 것들이 현지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어는 필요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 쓸 곳이 없는 언어 공부만큼 헛된 건 없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현지어에 관심을 두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조건이다.
공부는 모두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언어에 대한 것은 더욱 그렇다 이런 힘든 과정을 이겨내도록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 학생들에게 이 나라 언어에 다가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 생각된다.
2. 학교 안에서 현지어의 위치
흔히 같은 외국어로서 영어와 현지어를 비교하지만 학교에서 이 두 과목의 위상은 완전히 다르다. 영어는 대학입시에 중요한 과목이다. 문법이든 회화든 일단 영어의 중요성을 학교 교육과정에서 부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반해 현지어는 같은 외국어지만 교양과목에 가깝다. 이는 수업시수를 비교해도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학년에서 영어는 일주일에 주당 8시간이 넘지만 현지어는 모든 학년에서 3시간씩만 배우고 있다. 학생들이 교과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영어를 더 배우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예복습을 하는 학생은 많지만 현지어를 보강하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학교에서 또는 학생들에게 현지어는 영어와 같은 외국어지만 교과의 중요도와 시수 등이 다르기에 학교에서도 현지어 교육의 목표와 수준에 대해 고민하고 교육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어떤 능력에 대해서 ‘잘한다’라는 말은 상대적이다.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는 내실을 기해야 학생들의 앞날을 위한 준비가 될 것이다. 그저 학생들의 현지어 실력을 높이라는 말보다 현지어의 각 영역의 비중을 설정하고 중등 교육과정 이수 후 도달해야 하는 레벨을 영역별로 제시한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3. 커져가는 학교와 중등 학생들
가. 학교의 확장
우리학교는 지난 7년간 3배 가까이 학생 수가 늘었다. 매년 상당수의 신규 학생들이 우리학교로 유입되고 있고 이들 중 대다수는 이 나라 언어를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이에 중등 교실에서는 매년 기초부터 새롭게 가르쳐야 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으며 학생 간 실력의 격차도 매우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준별 분반을 하고 캐칭업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입과 진학을 위해 시간이 모자란 학생들에게 현지어를 대입 과목처럼 공부를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여기에 새로운 언어에 대한 진입장벽과 현지어에 대한 인식을 고려하고, 학교 교육 이외의 현지어 교육을 따로 받지 않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학생들의 현지어 실력은 나아지기 힘들다.
나. 중등 학생과 원어민의 수업 장악력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수업 요소 중 하나는 수업 장악력이다. 하지만 사춘기를 한창 겪고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교직에 처음 나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가끔씩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거나 무조건 잘해주기만 하다가 낭패를 본 적도 많다. 공부라는 건 힘들고 이 힘든 걸 하라고 하는 것이 우리 직업이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는 반드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원이나 기타 어학원 등에서 이러한 저항은 결석이나 중단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지만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결석이라는 선택은 부담스럽기에 교실 내에서 수면 혹은 장난 등 수업에 방해를 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제 상상을 해보자. 내가 한국어 교사로 해외 학교에서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나라 언어를 어느 정도 하지만 당연히 100% 원어민 수준은 되지 못하며 현지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때 내 눈에는 장난을 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실제로는 수업에 참여했다고 우길 때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을까? 또한 그 나라 문화에서 적절한 훈육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어떠한 말이 학생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 있게 수업을 장악하는 것은 무척 힘들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불편을 줄 수밖에 없으며 의사소통 과정에서 한계점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특정 외국어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며 원어민 수업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다.
원어민 교사의 현지어 혹은 영어 수업은 한국어 수업에 비해 수업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학교의 중심 사용언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제도적으로 원어민 교사들의 수업 장악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효율적인 수업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이다.
필자가 학교생활을 하며 학교와 교육에 대한 여러 평가와 민원들을 받으며 생각했던 것은 도대체 교육 활동에서의 정상이란 무엇인가이다. 어떤 사람들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대해 너무 쉽게 틀렸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틀린 지점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며 상식선에서 '잘해'라고만 말한다. 또 그 '잘해'라는 단어는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뜻으로 바뀌곤 한다. 하지만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현상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할 이전까지의 모든 것들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연 우리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에 대한 책임을 교사들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내가 근무할 당시 재외한국학교에서 현지어에 대한 위상은 높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나라를 무시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이 핵심 문제라고 생각했다. 본인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교사라면 일반인들의 상식선에서 교육을 논하는 것을 넘어 교육적인 차원에서 과연 이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학생이 본인 생각에서 도움이 될 만한 과목만 선택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