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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6. 2022

4.3 소진되는 나를 구하기 위해  도망(?)쳤지만

  교직 초임 때는 내가 학교일에 익숙지 않아서 바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가 쌓여 학교일에 적응하고 능숙해져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요령(?)을 조금 터득했다. 하지만 가끔은 돌아서는 마음 한 켠에서 찝찝하고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이유는 뭘까?

  



  교직 첫해 그리고 첫 학기, 나는 주중에 개인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방과후학교 수업(그때는 보충수업이라 불렀다.)까지 마치고 6시에 퇴근하고 뭐라도 입에 하나 넣고 나면 몸이 그냥 바닥에 녹아 붙어서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시 정신이 들면 9시 정도가 되었는데 그때 수업 준비를 마저 하고 12시, 1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3월이 지나갔다. 교직 첫해를 보내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었다. 첫해에 바로 담임을 맡았다는 둥, 수업 후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아 집에 와서도 밤늦게까지 업무 처리를 해야 한다는 둥 내가 하지 않는 일을 맡은 동기가 많았다.


  운이 좋게도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교직이 처음인 교사에게 담임을 주지 않았다. 학교 문화가 그렇게 조성되어 있었고, 학급 수가 많은 고등학교이다 보니 가능했다. 신임 교사에게는 수업 준비에만 집중하라고 했고 업무도 학생들을 접할 수 있는 생활 지도를 줬다. 그렇게 첫해는 오롯이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첫해는 이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이 첫해가 내 교직생활에 제일 한가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둘째 해부터 담임을 맡고 본격적으로 업무도 시작했다. 공강 시간에 수업 준비뿐만 아니라 담임 업무, 부서 업무를 처리했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학생 상담을 했다. 이따금 학부모 상담을 할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학교에 있는 동안 속된 말로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을 때도 있었다. 하루 8시간이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지나갔다. 퇴근 후에나 혼자서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가능했고, 그때서야 수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다. 금요일에는 일거리를 안고 퇴근했다. 방과후학교 업무를 맡아 3월 말까지 전교생의 종이 신청서를 받아 반편성하고, 출석부 만들고, 수업료까지 계산해야 했는데 주말까지 출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야간 자율학습이 있어서 감독을 하는 날에는 9시, 심야 자율학습 감독일 때는 11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 방학이 되면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여름방학 3주 중에 2주를 교과 중심으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데 국어 교사인 나는 빠지기 힘들었다. 게다가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쉬는 7일을 3일, 4일로 쪼개어 방과후학교 앞뒤에 붙여놓았다. 방학 중 방과후학교 수업은 8시 30분에 시작하여 15시 30분에 끝이 났고, 자율학습도 18시에 일찍(?) 끝이 났다.


  교직에 대한 꿈이 있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그 순간순간이 즐겁고, 교육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 교사가 힘과 위로가 되어주었지만 학교를 벗어날 때 나는 바싹 타고 남은 재처럼 소진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성장의 기쁨보다는 밀려드는 일에 지쳐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서 학교를 빼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웠다.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내 삶이 답답했지만 학교 안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맡은 학생, 수업, 업무 이 중 그 어느 것도 적당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결국 나는 학교를 잠시 벗어나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지원했고 2년 동안 내 삶을 새로운 경험으로 채웠다. 어찌 보면 필리핀 직업 훈련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했기에 학교와 비슷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정 업무가 간소했고 수업 시간도 적었고, 또 많은 재량권을 교사에게 주었기에 학생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수업 후에 학교 근처 식당에서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고 주말에는 학생들과 해변으로 놀러 갈 정도로 시간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꿈같은 2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근무를 했는데 이곳 교사의 삶은 예전과 다름없이 빡빡했다.


  외부에서는 교사가 괜찮은 직업이라고 많이들 생각한다. 기업보다 가시적인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적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일이 적은 직업은 절대 아니다. 사회 요구에 따라 교육 내용과 방법이 변화하고 있기에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하고 매년 바뀌는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상담과 연구를 해야 한다. 또 교육에 수반되는 행정 업무를 처리해야 하며 각종 민원에 대한 스트레스도 감당해야 한다.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에서는 교사 직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여 제시했다.   


  교직에서 10년 넘게 있다 보니 세부 항목 하나하나가 어떤 업무인지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떠오르면서 숨이 턱 막혔다. 영역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위의 업무를 모두 하고 있다. 저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야 하니 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여력이 없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가장 가까이 있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교사인데도 말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사의 업무 경감부터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덧 학교 경력 10년 차가 넘어선 나는 학교에서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 방법을 조금 터득했다. 고민이 있어 보여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은 학생을 모른 척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싸웠을 때, 각각 그들의 입장을 듣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돕기보다 모두를 크게 야단치고 마무리하기도 한다. 양심상(?) 학생부로 넘기지도 못 한다. 가끔은 퇴근길에 씁쓸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내일 또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려면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자위한다.


  과거에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자신을 혹사시키는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교사 본인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워라밸’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업무 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다 보니 행복하기 위해 자신을 더 쥐어짜는 교사를 가끔 보기도 한다. 학교에서 1분 1초를 쪼개어서 학교 업무를 하고 번아웃된 자신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 퇴근 후에 열심히 취미활동을 하는 교사들을 보면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교사가 학교 밖에서보다 학교 안에서 좀 더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과 좀 더 여유 있게 상담할 수 있다면, 다양한 교육 활동을 충분히 협의하고 개발하여 운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교사는 학교 안에서 소진이 아니라 성장하고 더 큰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학생들도 더욱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조직에서 눈에 바로 띄고 동료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수업보다는 업무이다보니 일이 벅찰 때면 정작 중요한 교육활동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교사의 존재 이유가 교육에 있고 교육을 통해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열심히 하루를 보냈는데도 가끔 공허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자신의 업무를 부장 교사 또는 교감에게 맡기고 학생 상담을 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살짝 놀랐다. 업무는 누구든 해도 되고 조금 늦어도 되는데, 상담이 필요해 찾아온 학생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거나 미루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동료 교사에 그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나는 과연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선뜻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참고자료] 

신현석(Hyun Seok Shin), 조대연(Dae Yeon Cho), and 김종윤(Jhong Yun Kim). "학교업무정상화를 위한 서울시 교사 직무분석과 정책제안 연구." 敎育問題硏究 33.2 (2020): 8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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