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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3. 2022

1-4.고인물였던 교사가 신규 선생님께 바치는 글(?)

  내가 근무했던 재외한국학교는 처음에 교사를 2년 계약으로 임용한다. 이후 교사는 연장이나 귀임을 선택하는데 다수의 교사들은 개인적, 경제적, 문화적 사정 등을 이유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귀임을 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는 매년 30% 정도의 신규 한국인 교사가 유입이 되고 당시의 학교 분위기, 기존 교사들의 성향, 새로 오는 교사들의 성향 등 많은 변수에 따라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게 된다. 자연스레 임용 동기끼리 먼저 친밀감이 생기고, 다들 교직 경력도 적지 않다 보니 학교 일에 기존 교사들과의 소통에는 소극적인 경우가 왕왕 생긴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가 쌓이고 심지어 학교 공동체 통합이 저해되기도 한다. 이를 해소할 수는 없을까? 아고뤠 둘째 해에 한국으로 먼저 귀국하여 나와 반대로 해외로 간 신규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교사 소식지에 글을 보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말은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남기신 말로 우리의 역사가 민족 정체성을 뒷받침한다는 의미이다. 일제강점기에 나라가 없어진 상황에서 역사마저 잊어버린다는 것은 일본인과 구별되는 한국인의 정체성까지도 위협받기 때문에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이 현대에서도 충분히 생명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족 경제와 문화적 수준 등 수많은 요인과 시대적 상황이 만나 각 개인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80대의 할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일제강점기 때 태어난 사람이고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을 가졌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학교로 돌려보자. 재외한국학교에서 근무해 본 사람이라면 가끔씩 비효율적이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 혹은 한국에서 예전에 사라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보고 의문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학교가 걸어온 역사와 변천 속에서 본다면 납득할 수 있고 이를 넘어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학교의 역사를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확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학교는 짧은 세월 동안 정말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전교생 50명도 안 되는 사과나무학교에서 시작해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학교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이 나라와 한국의 관계 변화에 따른 급격한 변화였다. 단적인 예로 현재 2012년에 완공된 본관 건물은 짓는 당시에 20년 후의 학생 수가 800명으로 확대될 것을 내다보고 지은 건물이었다. 그런데 단 5년 만에 학생 수 1,000명이 넘어 교실난에 허덕이게 되었고, 황급히 층수를 올리고 교장실을 빼 교실로 만드는 등 매년 방학 때마다 학교는 건설현장이 되었다.


  비단 시설뿐만 아니라 학교의 체제도 그때그때에 맞추어 빠르게 변화하였다. 학교가 작아 업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새로이 만들어야 했던 시절에는 당시의 학교 상황에 맞추어 규정과 체제를 만들었고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당면한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당시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은 수정하며 학교가 변화하였다. 또한 학교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교사의 수가 늘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교사들이 매년 합류하며 자신들의 색깔로 학교를 함께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의 학교가 탄생하였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는 이러한 학교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만족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학교는 이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당시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속해있지 않은 어정쩡한 학교의 제도적 위치, 현지 정부를 상대로 한 각종 허가와 교육 정책들, 한국에서는 당연히 누려야 했던 것들의 부재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 싸우고 이겨내며 만들어진 성과물인 것이다. 이는 어느 한 사람의 공과 과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낸 것이고 만들어 나갈 것이다.


  학교를 떠난 내가 이렇게 펜을 들게 된 것은 학교에서 조그마한 오해들이 모여 큰 갈라짐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기존 선생님들과의 조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은 가장 안타까운 모습 중 하나였다. 신규교사들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타국에서 1년을 먼저 보낸 선배 교사들에게 쉽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거나 건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부담되는 일이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감추기도 한다. 이 결과 선배 교사들과 함께 웃을 수는 있지만 마음을 나눌 수는 없는 사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학교의 특성을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평균 재임 기간이 짧은 학교의 특성상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 국가에 온전히 익숙하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재외한국학교 근무 1년 차 선생님이 보기에 근무 3년 차 선생님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결국 하는 일만 다를 뿐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또한 재외한국학교를 지원하는 선생님들의 특성상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선생님들이 많다. 재외한국학교는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외국에서의 삶을 돌이켜보면 남는 것은 결국 사람뿐이었다. 한국에서보다 불편한 것도 많았고 학교를 떠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배울 게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한다는 자체만으로 긴 시간을 즐겁게 근무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재외한국학교에 다시 한번 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항상 YES일 것이다.




  조직 구성원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그 조직이 건강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업무의 연속성, 안정성 등 여러 부분에서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직에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의 처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이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없다면 결국 그 조직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이 교사 개인에 국한해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하였다면 조직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역시 중요한 사항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을 대체가능한 부속품처럼 여기는 지금시대에서, 삼고초려가 조직에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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