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

by 풍뎅이

해외 출장이 잦던 시절.

견딜만한 비행시간의 한계는 4시간이었다. 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움츠리고 오래 앉아 있으면 온몸에 좀이 쑤셨다. 이럴 때 지루함을 달래준 것은 손바닥만 한 좌석 스크린에서 상영하던 영화였다. 제법 볼만한 명화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출장 때마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끔씩 찾아보게 되는 영화 <가을의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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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전설>은 로키 산맥 자락 몬태나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다. 자연은 원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음을 드러내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애증이 얼룩진 슬픔이 깊게 배어 있다.


한 여인을 사랑하는 세 형제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 살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결실을 맺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나고 보면 운명처럼 엇갈리기도 하고, 처음부터 가는 길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막내 사무엘의 약혼녀 수잔나는 하필이면 야생마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트리스탄을 마음에 품었다. 트리스탄은 동생 사무엘이 전쟁터에서 죽은 뒤 고향에 정주하지 않고 세상을 떠돌았다. 그런 그를 수잔나는 애타게 지켜봤다. 수잔나는 그와 함께 한 곳에 머물길 원했지만 애당초 그들의 운명은 어긋났고, 사랑은 비켜갔다. 수잔나는 결국 첫째인 알프레드와 백년가약을 맺게 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은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수잔나 삶의 한가운데는 언제나 가슴 깊이 담아 둔 트리스탄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잔나는 정치인으로 성공한 알프레드와 함께 하는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트리스탄은 매번 그녀 마음 깊은 곳에 파문을 일으킨다. 수잔나는 트리스탄과 우연히 재회한 뒤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지워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죽음을 택해 알프레드 곁을 떠난다.


<가을의 전설>은 슬픈 서사만큼 배경음악이 아름답다. 제임스 호너가 작곡한 OST의 피아노 선율은 몬태나의 풍광을 옮겨 놓은 듯 선명하고도 애잔하다. 호너는 웅대한 자연과 대비되는 사랑하는 인간의 거친 듯 섬세한 삶을 오선지에 옮겨 놓았다.


<가을의 전설>은 영어 원제인 <Legends of the fall>의 'fall'이 '가을'이냐 아니면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냐를 두고 제목 오역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소설의 원작자 짐 해리슨은 두 가지 의미를 다 내포하고 있다며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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