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술을 마신 뒤 집에서 옷을 벗다 넘어져 이마가 크게 찢어졌다. 응급실에 가려 했으나 술에 취한 환자는 받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 병원에서 상처를 꿰맸다. 의사가 한 달 동안 금주령을 내렸다. 그 이후로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40년 정도 술을 마셨지만 술에 취해 넘어지거나 다친 건 처음이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술이 나를 잠식한 셈이다. 술을 마시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 과연 술 마실 자격이 있는지 회의도 들었다.
내가 술을 끊은 것과 상관없이 저녁 술자리는 있게 마련이다. 이제 일행들이 신나게 술잔을 돌릴 때 나는 우아하게 콜라를 마신다. 의외로 술자리가 그리 어색하지가 않다. 술자리라는 게 대체로 시답잖은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술을 마시든 아니든 큰 상관이 없다. 어차피 술에 취하면 남이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처음에는 술을 권하다가 나중에는 본인들 술 마시기에 급급하다. 술이 술을 부르는 것이다.
술을 끊은 뒤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머리가 맑아졌다. 알코올에 질식사한 뇌세포가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머릿속에서 맴돌 뿐 잘 기억나지 않던 이름도 떠올리는 횟수가 잦아졌다. 수면의 질도 좋아졌다. 지금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면 콜레스테롤이나 혈당 수치 등도 좋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의사가 선포한 금주령 유통 기한인 한 달이 지났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술을 끊으면 남은 인생에 술 마시는 즐거움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종전 같이 빈번하게 술을 마시기는 어렵다. 몸이 경고할 때는 순응해야 한다. 그것을 거스르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다른 선택지는 술을 마시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방안이다. 문제는 음주의 빈도와 1회의 양을 얼마로 할 것이냐는 것이다. 주종도 제한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수학 난제만큼이나 어렵다.
술은 삶을 풍성하게 하는 동반자다. 와인 같은 좋은 술을 적당히 마시면 장수한다.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고조될 때 한잔의 술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친구나 이웃 같은 친목 모임에도 윤활유가 된다. 술로 얻게 되는 효용이 술로 잃게 되는 건강상의 손실을 상쇄하고 남는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