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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Apr 24. 2017

하룻강아지는 범을 모르고 싶다

2017년 4월 24일, 여든 번째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변하고 있다 한다. 공무원, 선생님, 정년이나 연금이 보장되는 각종 직업들이 자기소개서를 채운단다. 나인-투-식스가 유토피아로 취급되는 현실에서, 심지어는 초등학교 저학년마저 별보기 운동을 하는 이 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다.

아이라고 합리적이지 말란 법이 있을까. 아이는 순수해야지, 라고 중얼대는 것도 결국은 꼰대가 되는 길이다. 그런데 가슴이 한 켠이 저리다. '순수'라는 본질에 아이들의 실존을 가두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이다. 하룻강아지는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어쩌면, 몰라야만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안정을 추구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세상이 얼마나 불안한 곳인지를 깨닫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익지 않은 벼가 고개를 숙이면 흉작의 복선이다. 어린 벼가 고개를 숙이면, 채 익지 않은 낱알도 버티지 못할만큼 줄기가 약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밤 늦은 시간에도 학원가는 불 꺼질 줄 모른다. 영어유치원을 보내놨더니, 초등학교에서 한국말을 못해 "키즈 스피치 학원"에 다시 보내고 마는 불상사가, 불야성을 이룬다. 요새 하룻강아지들은 무서우리만치 범 무서운 줄 안다. 가끔은, 나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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