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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Oct 04. 2017

슬픈 콩깍지

2017년 10월 4일, 아흔네 번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본디 아름답게 태어났느냐, 원래부터 아름답게 생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법. 지금, 여기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뿐이다.

애초에 생각을 떠난 감각이 있기나 할까. 생각이나 감각 혼자만으로는 아름다움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딪혀 내 눈, 망막에 닿은 빛을 모은다고 아름다움일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떠올려본들 아름다움일까. 아름다움은 생각과 감각, 두 날개로 난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나도 사랑하는 이에게 아름답고 싶다. 님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날마다 전전긍긍이다. 허나 내가 느끼는 내 모습은 더없이 초라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부족한 걸까. 그건 알 수 없다. 생각을 떠난 감각은 정신을 떠난 육체와 같으니까. 나의 사랑이 깊어지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자가 된다. 살아있는 신, 신처럼 위대한 사람. 그 앞에 나는 초라하다. 나는 그처럼 대단한 존재에게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눈 씻고 보아도 부족하니 속이 상할 수밖에.

콩깍지가 씌인 눈으로 거울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거울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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