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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Oct 15. 2017

일이라는 건

2017년 10월 15일, 아흔여섯 번째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거울을 보는 일과 같이 숭고하다.

시를 짓든 노래를 하든
가죽을 가다듬고 꿰어
가방을 만들든
내가 없었다면 세상에 없었을 것들이
나로 인해 존재한다.

당신도 잊고 나를 기르던
부모님의 눈빛이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도 깃든다.
내가 없어도 작품은 남는다.
노동으로 바꾼 세상에서 나는 나를 본다.

일이라는 건 그렇다.

그러나 나는
공장 속에 살고 있다.
생산라인에 실려 들이닥치는 일감은
나를 온전히 비추지 못한다.
깨진 거울 조각처럼

하루 온종일 일을 해도 좀처럼 나는 없다.
좁은 공간에서 쓰고 고치고 찢어지는 와중에 나도 나를 잊을 만큼 열심이었음에도
내가 무얼 한 건지
그래서 도대체 무엇에 나는 열중이었는지
알 수 없어 가슴이 빈다.

내 생명을 할애해 얻은
맥주 한 캔과 텔레비전 프로그램 따위로
싸구려 잠을 청한다.

나는 귀하다, 나는 귀하다,
되뇌이면서
만원 버스, 순대같은 지하철에서
숨을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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