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영 May 16. 2018

징마와 가뭄

2018년 5월 16일, 백열 번째

비가 온다. 굵고 세차게 쏟아진다. 묵은 먼지를 씻어내려고 하늘이 뚫린 듯이 쏟아져 내린다.

카타르시스. 쌓인 감정을 터뜨리며 속을 비우는 일이다. 시원하게 울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한바탕 쏟고 나서 가슴이 뚫린 듯 했던 날이 분명히 있었는데,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던 때가 있었다. 매일매일 내가 어떤 존재였고,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고민하던 때였다. 한두 달을 넘게 울며 지냈다.

장마같은 시간이었다. 마음의 때가 씻기기는커녕 오히려 흙탕물이 차오르기만 했다. 범람한 물이 언제 쏟아질지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의 제방은 한없이 낮아보였고, 누군가 침을 뱉거나 오줌을 싸기만 해도 무너져내리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나는 작고 가엾은 강둑을 다시 메웠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사람이었다. 무너지면 무너진 채로 벌거벗은 마음을 보일 사람이 있었다. 울어도 울어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버거웠으나 나를 안아주던 품만큼은 참 따뜻했다. 어쩌면 내 눈물의 절반을 그가 받아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원하지는 않았다. 마음의 홍수는 찝찝하게 지나갔다.


요즘은 마음이 가물어 걱정이다. 내가 초라해보일 때나 혹은 나의 어제보다 다른 이의 오늘이 나아보일 때, 아니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싶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난다. 밤 새고 집에 돌아왔는데 수도관 교체로 단수가 된 느낌이랄까. 당황스럽게 눈물이 급하다. 마음에 먼지가 쌓여 날이 갈수록 텁텁하다.

시원하게 울어본 적 언제였을까.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본다. 보아주는 사람 없이 내리는 비는 없다. 창밖을 가만히 응시할 줄 아는 사람만 비를 볼 수 있다. 짙은 구름에 날이 어두워지고 높은 습도에 피부가 젖어드는 걸 눈치채는 사람만 비를 볼 수 있다.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마저 잃은 채 온종일 사는 사람에게 비는 의미없는 몸짓이다.

흘러넘치는 눈물을 받아달라고 안기는 건 그나마 쉬운 일이었던 것 같다. 가물어 갈라진 마음이 상처를 입힐까 다가가기도 쉽지 않다. 소나기가 한바탕 씻어냈으면 싶다. 내리는 비에 가슴이라도 열어 적시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권선징악, 그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