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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Aug 19. 2018

흉터

2018년 8월 19일, 백열다섯 번째

나는 가끔 전쟁 속 내 모습을 떠올린다. 이기든 지든, 살아남든 죽든 나는 아주 힘겨워하리라.

훈련 중에 부하 한 명을 다치게 했다. 훈련이 끝나고 철수를 준비하던 때였다. 장갑차 위에 달려있는, 두께 3cm 철판으로 두른 기관총을 병사 한 명과 나 단둘이 내렸다. 어림잡아 40kg 정도였을까.

사실 나는 말로 시키기만 해봤지 직접 해본 적은 없었다. 그는 입대한지 두 달이 갓 지난 신병이었다. 잘 몰라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장갑차에서 내리는 데까지는 순조로웠다. 거치대에서 떼어내 포탑 위에 올려두고, 내가 차량으로 내려가면 그는 포탑 위에서 밀어주고, 차량에 사뿐히 쇳덩이를 내려놓으면 그가 내려오고.. 차분히 한 단계씩 해나갔다.

사고는 찰나였다. 둘이서 쇳덩이를 들고 가던 길이었다. 땅에 내려놓은 방수포 매듭에 병사 발이 걸렸다. 피해갔어야 했는데, 내가 알지 못했다. 내가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 철판 모퉁이를 잡던 병사의 손에 40kg의 무게가 온전히 실렸다. 손바닥이 새끼손가락만큼 찢어졌다. 정맥이 끊어졌는지 검은 피가 꽤 많이 새어나왔다.

다행히 응급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상처를 소독하고 압박했다. 그 후로 그는 8주 동안 손을 못 썼다. 뼈는 이상 없다고 했다. 손가락이 잘릴 수도 있었다. 천운이었다. 마음 속으로는 미안하다고 수십 번 말했으나 직접 사과한 건 한두 번이었다.

내 모습이 역겨웠다. 병사가 넘어지고 쇳덩이가 기울어지던 순간, 다치겠다,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손이 위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팔꿈치까지 붕대로 친친 감은 병사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얼마 안 가 나는 부대를 옮기게 됐다. 반년이 지나 다시 부대를 찾았다. 그때 다쳤던 병사가 반갑게, 정말 반갑게 내게 경례했다. 나는 경례하던 손부터 뺏어들고 손바닥을 펼쳤다. 나의 미숙함과 부주의는 그의 손에 낙인으로 남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격렬한 전투 속의 내 모습을 생각한다. 내 잘못으로 죽거나 다칠 이들을 떠올린다. 나는 그 죄책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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