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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Oct 13. 2022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정치인이다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6

사내정치는 우리 주변에서 결코 몰아낼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가 현상과 존재를 동일시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드러난 것만 있는 것으로 여기는 정치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현명하게 사는 삶은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이 사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인정하는 삶이다. 인간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탐구하고 그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사는 삶, 운이 좋다면 그 한계를 조금 더 바깥으로 옮기는 삶이 슬기로운 삶이다. 사내정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고 언제나 동료 인간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 인간은 정치라는 한계 안에 산다. 회사(會社)라는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회사가 여러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그 무엇인 이상, 회사 안에서 정치는 필연적이다. 홀로 일을 꾀하는 1인 기업(企業)에서 정치는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명의 인간이 모이면 인간은 정치적이다.


그렇다면 정치라는 한계 안에서 현명한 삶은 가장 정치적인 사람들의 모습,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참고해 우리 삶에 맞추어 보는 것이 아닐까? 물론 모두가 선거에 출마해 나랏일을 맡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생각이라도 해보자는 거다. 우리가 동료 인간에게 우리 스스로를 드러내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그 드러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와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친구가 내게 말했다. 정치인들이 그만 싸우고 일 좀 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치적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것도 우스워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지?”


정치인은 말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어떤 행위든 행위자가 말하지 않으면 행위만 남고 행위자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관심 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산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은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 어떤 변화든 그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 힘써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설사 알게 되더라도 세상이 자연스레 그렇게 변했다고 생각할 게 뻔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생각할 시간이 없고 여력이 없다. 자기 세계 속에 사느라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살아남는 길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힘써 알리는 것뿐이다.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면 사라진다. 그건 인간의 세계, 정치적인 세계에서 살아남는 첫 번째 원칙이다. 이름을 알리지 못한 정치인은 죽은 정치인과 같다. 오히려 죽어서도 살아있을 때만큼 또렷한 정치인이 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봐도 그렇다. 나와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 회사 동료, 연인, 친한 친구는 내 세계 안에서 또렷하게 산다. 어쩌다 한 번 연락하는 사람, 가끔 안부만 묻고 지내는 사람은 내 세계에서 나타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이름을 들어야 기억하는 오랜 동창, 친척 결혼식에서나 같은 공간에 있게 되는 몇 촌의 누구의 몇 촌이라는 머나먼 친척은, 적어도 내 삶에서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다. 때때로 내게 반갑게 인사하는데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옛 친구에게 내가 미안한 이유는, 그리고 그 순간이 아주 당혹스러운 이유는, 그가 나를 잊지 않고 그의 세계에서 나와 함께 살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정치인이다.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무언가를 함으로써 서로의 세계에 서로가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직장에서도 인간은 정치적이다.  인간이 회사에서 거짓, 사기, 협잡, 배신, 선동, 모략, 모순을 일으킨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 눈에 띄어야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모든 직장인은 정치적이다. 내가 한 시장조사, 자료 정리, 발표, 고객과의 소통, 계획, 지시, 실행, 확인. 하다못해 회의실을 예약하고 인쇄기에 종이를 채워 넣는 일까지, 내가 했음을 알려야 내가 살아남는다. 이때 살아남는다는 말은 흔히 하는 말처럼 다른 경쟁자를 짓밟고 올라선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적인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나의 모습, 존재, 인격, 삶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내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정반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보자. 이 세상 어딘가에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꽤나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들의 존재는 비밀에 싸여 있었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일본이었다. 바로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다. 히키코모리는 반년 이상 집 밖에 나가지 않는 회피성 성격장애를 의미한다. 학교에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서만 나타나던 증상이 점차 어른들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히키코모리를 사회현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거나 시작도 하지 않은 사람들, 친구도 가족도 만나지 않고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 저마다 사연이야 있겠지만 드러남의 공간이자 정치적인 영역인 집 밖 세계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매한가지다. 세상에 히키코모리는 몇 명이나 있을까? 그들이 스스로 비밀의 공간 안에 숨어 들어가는 한 우리는 그들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있으면서도 없는 묘한 인간이다.


논의의 문을 열었던 일꾼과 말꾼 이야기도 이와 같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드러낼지 말지를 두고 고민한다. 그 순간 우리는 정치인의 길과 히키코모리의 길 사이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둘 중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단지 사람마다 그때 놓인 상황마다 더 적절한 길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직장인의 철학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1화 일꾼과 말꾼

2화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들에게

3화 드러난 것이 있는 것이다

4화 우리가 사는 세계

5화 사내정치를 위한 변명

6화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정치인이다(방금 읽은 글)

7화 보이지 않아 사라지는 것들

8화 가장 어두운 범죄

9화 있어 보이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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