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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10. 2017

이런 내 모습까지도

2017년 3월 10일, 쉰다섯 번째

난파당한 승객이 어떤 섬에 표류한다. 섬에는 원주민이 있었는데, 표류한 사람에게 1년 동안 섬을 통치할 기회를 주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승객은 왕이 되어 1년을 다스렸다. 지혜로운 왕은 그 1년 사이에, 왕에서 물러날 때 살 거처와 생계를 마련했다. 임기가 끝나고, 왕은 다시 난파한 승객이 되었으나 미리 준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익히 들은 동화다.

사랑도 마찬가지. 나는 네게 표류했다. 사랑은 내가 생각지도 못할 때 찾아왔다. 너는 내게 너무나 감사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의무처럼 너를 보살핀다. 공자는 종심이라 했다. 마음 내키는대로 해도 법을 어기지 않듯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

우리 앞에 행복한 날만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다.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하지만, 이 마음은 변치 않을 테지만, 정말 아주 먼 훗날에도 지금처럼 너를 웃게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너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미래의 나 때문에 속상하다.

사랑은 변질되지 않지만, 상황은 언제나 변화한다. 네게 지금처럼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날은 분명히 온다. 너는 내가 변했다고 느끼겠지. 너는 서운해도 말 없이 참을 사람이어서, 더욱 속상하다. 어쩌면 그런 상황에 지쳐 내가 네게서 멀어질 수도 있겠지.

왕이 된 승객은 1년 후를 고민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짓궂은 짓을 해본다. 받는 사랑. 아무리 해도 어색하지만, 철면피를 깔아본다. 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아도 기어코 참아본다. 이런 내 모습도 사랑하냐고 묻고 있는 거다. 참 나쁘게도,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너를 시험한다. 정말 시험을 보아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도.

그럴 때마다 기꺼이 시험대에 오른다. 심지어 너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모습까지 찾아내 사랑해준다. 이런 네 모습도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너는 내게 사랑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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