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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09. 2017

경쟁이 질문을 구축한다

2017년 3월 9일, 쉰네 번째

첫만남 첫마디는 의문문이어야 한다. 주로 이름을 묻거나, 출신을 묻는다. 그래야 대화의 바톤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독백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이 없다. 그래서 질문은 중요하다.

첫만남이 아니더라도 질문은 요긴하다. 질문은 깊은 관계를 부른다. 특히, 전문적인 영역에서 질문은 대화의 수준과 품격을 높인다. 네 말에 집중하고 있어, 그래서 궁금한 점이 절로 떠오르더라, 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관심 없는 사람에겐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쟁이라는 맥락에서는 질문이 쉽지 않다. 피아식별이 어려운 사회에서 섣부른 관계는 금물이기 때문이다. 진심이 가는 사람이 있어도 제삼의 경쟁자가 보고 있으므로 관계는 피상에 머문다. 내가 느낀 경쟁의 최첨단은 수능과 대학이었다.

수능 공부를 잘 하려면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 수능시험은 애초에 관계가 결여된 교육을 전제한다. 그 결과 지식을 주입하는 행위만 남는다. 교육을 위해 어느 정도 지식을 주입하긴 해야 하지만, 주입만 해도 되는 교육은 있을 수 없다. 수능은, 수단이 목적으로 득세해 벌어진 참사다. 지식의 푸아그라가 된 수험생은 그렇게 대학생이 된다.

대학에서, 질문 있나요? 하고 묻는 말은 사실 요식행위다. 수강생들은 그 뒤에 나올,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공부를 안 하는 게 미덕이다. 했어도 안 했다고 말해야 예의인 사회가 대학이다. 나 공부 열심히 했어, 하는 말은, 네 학점을 빼앗겠다, 라는 말과 유사하게 들린다. 교수에 대한 질문은 학업에 대한 열의를 뜻하고, 동시에 교수와 깊은 관계를 원한다는 의미를 전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대학의 상도덕이다. 공부하려면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담을 연 적이 있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질의응답을 했다. 주최국인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겠다고 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설상가상 중국 기자가 일어나서, 질문이 없으면 아시아를 대표해 자기가 질문해도 되냐고 물었다. 결국 중국이 아시아를 대표했다.

대학물 꽤나 먹은 기자들이 무엇이 모자라 질문을 안 했을까. 글쎄, 수능 잘 보고 좋은 대학을 다녀와서 못 한 거다. 기자에게는 기자회견이 생존경쟁의 최전선이다. 자연히 입은 닫히고 귀가 열린다. 그게 수능과 대학이 준 유일한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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