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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23. 2017

일단 움직이자, 아님 말고

2017년 3월 22일, 예순네 번째

어린 시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자동차를 어떻게 운전하는 걸까. 자전거는 핸들을 꺾는대로 바퀴가 꺾인다. 바퀴가 이루는 각도도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는 핸들과 바퀴가 똑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눈으로 볼 수도 없다.

아버지께 여쭤보았다. "가보면 알게 돼." 자동차를 타고 가볼 수 없었으므로 알 수도 없었다. 어른이 되고, 운전을 배우고 나서야 아버지 말씀을 이해했다. 가보면 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몇 분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멈춘 채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움직이지 않는 것에 방향은 없다. 느리게라도 움직이면 눈으로 몸으로 방향을 느낄 수 있다. 이건 초보운전에게도 카레이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처음 운전석에 앉았을 때가 떠오른다. 커다란 자동차를 통제할 수 없을까 겁이 났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면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텐데, 벽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발끝에 힘을 풀지 않았다. 내가 운전할 줄 알게 된 순간은 면허를 받은 순간이 아니라 발 끝에 힘을 푼 순간이었다.

인생도 다를 바 없다. 방향을 알려면 일단 가보아야 한다.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고민은 방향으로 인한 방황이다. 꿈을 좇아야 할까, 돈을 좇아야 할까. 식상해질 지경이다. 물론 나도 그 식상한 고민으로 근 일년을 앓고 있지만.

돈이든 꿈이든 가보고 생각하자. 갈림길에서 멈추는 사람은 어느 길에든 일단 들어서는 사람에게 언제나 진다. 틀린 길에 들어섰더라도, 되돌아 가면 된다. 다시 그 자리에 도착하면 갈림길은 이미 사라져있기 때문이다. 멈춰있는 사람은 아직도 고민 중이다.


물론 말이야 쉽다. 요즘같이 모두가 전력질주하는 세상에서 길 한 번 잘못 들면 출혈이 크다. 게다가 다들 앞으로만 가니 일방통행 같다. 후진이 불가능해 보인다. 길을 헤매면 낙오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은 둘 중 하나다. 후회하거나 고민하거나. 아무도 말을 안 하고 있어서 모를 뿐이다. 대다수는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남들 다 가는 길을 갔다. 방향에 대한 고민을 줄이고 속도만 키운 삶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꽤나 성공한듯 보이지만 원래 생각했던 목적지가 아닐 때 후회가 막심하다.

다른 몇몇은 후회하는 그들을 보고 망설이는 사람들이다. 남들 다 가는 길을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막상 가자니 발이 안 떨어진다. 게다가 어느 길이든 선택하면 속도를 올려야 할 것만 같다.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또 누군가는 나를 앞질렀을 테니까. 이미 이렇게 시간을 지체했으니 앞으로는 더 고민할 여유가 없다. 어느 길이든 선택하면 인생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또 너무 무거워서 발이 안 떨어진다. 이번 한 번에 내 인생이 결정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고민의 순환고리는 이렇게 완성된다. 갈림길에 멈춰 괴로워하는 이는 누구나 이런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억하자. 어느 누구도 내 삶에 방향을 정해주지 않았다. 사르트르가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어떤 존재도 내 본질을 규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실존한다는 사실, 어느 방향이든 내가 가는 곳이 나의 길이자 나의 삶이라는 사실이다. 일방통행이라고 말한 이는 아무도 없다. 최저속도제한을 걸어둔 이도 없다. 내 멋대로 사는 게 멋진 삶이다.


여자친구에게 운전을 가르쳐 줄 때였다. 여자친구는 내게 같은 질문을 하면서 운전이 무섭다고 했다. 바퀴가 얼마나 꺾여있는지 모르겠어. 나도 처음엔 그게 무서웠다고 답했다. 대신, 언제든 멈출 수 있으니 천천히 발을 떼 보라고 했다. 영 아니다 싶으면 재깍 발에 힘을 주라고, 그러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이제 운전에 능숙해졌다. 아직 운전대를 잡으면 어깨가 움츠러들긴 하지만 좌회전도, 차선변경도 문제 없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나는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기로 했다. 여자친구는 가죽공예를 하고 나는 글을 쓴다. 영 아니다 싶으면 멈추면 된다. 다시 돌아가면 갈림길은 이제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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