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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04. 2020

달콤했던 꿈이 현실로

  한국에 돌아온 후로 난 마치 달콤한 꿈에 빠져 있다가 깬 기분이었다.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은 분명 그곳이랑 달랐다. 그곳에는 치열함이 없었다. 그 누구도 옆 사람과 경쟁하려 들지 않았다. 반면에 여기는 내가 누군가를 넘어 서기 위해 공부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무엇을 위해 이겨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조차 모르는데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건 당연했다. 내가 다른 세상을 알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이후로 한동안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유학을 원했던 건 아마도 그런 경쟁과 치열함 속에서 그저 도피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설득해야만 했다. 부모님의 지원이 없다면 그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얼마가 지난 후에 나는 부모님께 의사를 말씀드렸고 예상했던 대로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모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그곳으로 혼자 보낸다는 것은 너무도 염려스러운 일이었고 경제적인 부분 또한 고려해 봐야 할 사항이었다. 세 식구가 오순도순 함께 지내왔는데 갑자기 떨어져 지내게 된다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유학이라는 나의 꿈은 그저 꿈으로만 간직되려나 보다 했다. 그때는 내가 그 꿈을 포기한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내려놓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난 내 마음속에서 이미 그곳에 가 있는 나를  생각하며 행복한 상상을 했고, 그것은 결국 내 현실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생각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아이였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이 세상이, 나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영향이 더 적었기 때문에 내 안에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수록 학교와 가정에서, 또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나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보다 더 잘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무언가를 시도해 보기도 전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나의 생각보다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 등을 통해서 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는 한, 그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내 마음속에서 키워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말로 내가 부족해서 생긴 나의 한계가 아니었다. 한계가 없는 나를 한계가 있도록 만드는 것은 나에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한계 속에 가두기 시작했다. 유학이라는 꿈을 품게 되면서 나는 그것을 더욱더 느끼게 되었다. 나의 내면의 생각들이 나에게 말했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지금은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지만 나중에 더 커보면 알게 될 거야.’

‘세상을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걸 매번 다 할 수는 없는 거야.’

‘넌 정말 사람들 말처럼 유별난 아이야. 네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유학을 가겠다고 하는 애가 또 어디 있어?’


  누군가는 실제로 한계가 없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 꿈을 펼치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아 자신의 꿈을 잊혀간 오래된 사진첩과 같이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게 된다. 유학을 고민할 때의 나 또한 내가 처해있던 환경적인 부분이 나의 꿈과 목표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열정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가 나의 한계를 마음속에서 만들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알아서 나에게 다가올 거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자각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를 한계에 가둠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어 나가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당시의 나는 이 사실을 몰랐지만, 다행히도 순수했던 열정만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나의 열정을 누그러뜨리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음에도 그때의 나는 어렸고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내 안에 계속 그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했고, 나도 모르게 그 꿈을 품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은 상태로 생활하다 보니, 어느 날 나에게 그 꿈이 실현되었다. 의도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영어에만 푹 빠져서 공부하고 있었고, 시험을 볼 때마다 영어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나머지 과목은 당연히 흥미가 없었기에 당연히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은 나의 꿈을 향해 있었다. 그 열정의 에너지는 고스란히 부모님께 전달되었고 기나긴 고민의 시간 끝에 마침내 유학을 허락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님께서는 몇 달 못 버티고 돌아오게 될 거라고 믿고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고, 10시간 넘는 장거리 비행을 또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 길나긴 방황의 시작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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