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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05. 2020

미래를 살기 시작한 아이

  원래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나의 일상과 내가 속해 있던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집 앞 마트를 들러도 정이 많고 성격 급한 한국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만나 본 대다수의 뉴질랜드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로웠지만 정이 없게 느껴져 차갑다는 인상을 주는 백인들이었다. 가끔 피부가 검은 마오리족(뉴질랜드 원주민)이나 섬나라 사람들도 있었다. 원리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차분하고 느릿느릿 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았고 무엇이든 빨리 처리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었다.

 
  내가 다니게 된 학교는 가톨릭 학교로 학생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프랑스, 인도, 싱가포르, 대만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 당시 백인 키위 친구들과는 뭔지 모르게 어우러질 수 없게 느껴져 다가가는 것조차 시도해본 적 없었고, 피부색이 검은 섬나라(통가, 사모아 등) 친구들은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서 내가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아이들끼리 모여 놀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두려웠던 낯선 환경에서의 학교생활에 많은 힘이 되었다. 한국 친구들과는 인사도 하고 가끔 밥도 먹으며 지냈지만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함께 어울리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로 한국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얘기를 하면 한국말을 쓰느라 영어를 배우러 이 먼 곳까지 온 이유가 없었고, 둘째로 그 친구들과 함께 할 때면 늘 인종차별을 당했다. 어느 날은 야외 풀밭에 앉아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었는데 섬나라 아이들 서너 명이 지나가면서 우리를 쓱 보더니 ‘Stink!’라고 하고는 지나갔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우리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도 스스로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고스란히 현실로 드러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모여 있으면 적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더 자주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했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수업에 대한 개념이었다. 한국에서는 각 반이 있고 과목마다 선생님이 반을 찾아 들어오셔서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이곳에서는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하여 시간표를 짜고 해당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을 찾아다녔다. 자신이 선택한 과목을 듣기 위해 교실을 찾아가는 행위 자체가 색다르다고 느꼈다. 선생님이 각 교실에 찾아오시는 것은 해당 과목에 대한 선생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러 오시는 느낌인 반면에 내가 해당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로 찾아가는 것은 주체적으로 배우러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수업을 선택하는 것부터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나에게 이렇게나 많은 선택권이 주어진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무슨 선택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선택을 하고 나면 항상 이것이 옳은 것일까를 생각했고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선택할 때마다 혼란스럽기만 했다. 대학 입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학과를 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과목을 선택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선택한 과목에 대한 시험만 보면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들이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과목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과목을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방향은 스스로가 잡아야 했다. 나는 끊임없이 미래를 생각하며 어떤 선택을 해야 미래에 내가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만 생각하고 달리려다 보니 사회에서 요구하는 나의 모습에 가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현재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당연한 사실을 아는데 나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하는 방법 또한 몰랐다.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내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그 생각들은 내가 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입했던 말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가령, 내가 순수하게 그림 그리는 행위를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할 때, 나는 그것을 하는 것이 나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때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앞으로 펼쳐질 길을 미리 예측하고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동안 들어오기만 했던 사실을 기반으로 판단을 내렸다. 아니면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의견을 듣고 다른 것을 찾아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할 때도 있었다. 그 생각들은 늘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들었고 그것이 내린 판단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 생각들에 휩쓸려 살다가 나의 인생이 여전히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무엇인가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하기 전까지 나는 그게 맞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 생각들은 내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예측하면서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는 스스로를 가뒀는지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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