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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Jan 31. 2018

[한 모금] 기-승-전 마샬라차이

스타아니스와 정향으로부터 비롯된 요리 유람

최근 몇년 새 선명하게 인지하고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에는 포괄적인 의미가있는데, 먹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음식에 관심이 많으며, 종종 새로운 식재료로 요리를 시도하고, 한끼를 먹어도 다양한 것을 차려놓고 먹는다는의미를 포함한다.(주말이면 무언가를 만들고, 먹고, 치우느라 시간을 보낸다) 세상에는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무궁무진할테지만, 어쨋든 지금껏 경험한 바로 나는 각종 향신료에 거부감이 없는 편이고 오히려 이것들이 들어간 음식을 즐긴다. 열흘에 한 번정도는 양꼬치를 먹고, 삼일에 한번꼴로 집에서 쌀국수를 해먹으며, 최근에는 마라탕과 양고기 전골에 빠져있고, 케밥이나 타코, 인도커리 역시 사랑해 마지 않는다. 나는 위장이 약해 배탈이잘나고 위염도 잦은 편인데, 어쨌든 나의 위가 허락하는 선에서의 (매운것은 그다지 먹지 못한다) 다양한 음식들을 즐기는 편이다.


사실 원래 무엇이든 잘 먹기는 했지만 나의 취향과 선호도를 인식하게 된것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급식과 집밥을 먹으며 지낸 초중고 19년이야 크루통이 들어간 스프와 미트소스 스파게티가 급식에 나오면 가장 호강하는 식사였으니 말이다. 대학생 때 역시 주머니도 가볍고, 다양성의 면에서는 선택할 만한 식당이 많지 않았으니, 요리와 향신료가 주는 섬세한 즐거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해보게 된건 일을 하게 된 이후지 않나 싶다. 특히 직장에서 회식이이나 각종 모임자리로 가는 음식점은 적어도 맛에서 중간 이상은 보장된 경우가 많고, 개인적으로 찾아가 볼생각을 하지 못했던 생소한 음식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있다. 나의 경우 모츠나베(대창이 들어간 일본식 국물요리)와 사프란이 들어간 리조또(노란 죽같은건 뭐야?하고 먹었다가 맛있어서 감동했다.사프란만세), 캐비어(이건 왜 비싼 걸까), 직접 빚은 막걸리(앵두향이 난다!)등이 일단 기억에 남는다.


작년 말 내 생일에 동생은 선물을 사주겠다며 나에게 직접 고를 것을 제안해왔고, 주머니가 가벼운 취준생의 부담을 덜어주며 내가 즐거울 수 있는 품목은 무얼까 고민하다가, 아 식재료! 하는 생각이 번뜩들어 각종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하여 주문하게 된 것이 스모크치즈, 화이트와인식초, 두반장, 피쉬소스, 치킨스톡, 일본 밀크티 그리고 오레가노, 스타아니스, 정향, 타임 같은 향신료였다. 고를 때의 기준은 활용도가 높을 것 같으면서도 되도록이면 아직 사용해 본적 없는 식재료일 것. 여담이지만 생일 며칠 후 만난 나의 친구들 역시 약속이라도 한듯 나에게 한 박스나 되는 식재료(주로 살라미, 파스트라미, 베이컨 같은 훈제고기 종류가 든)를 안겨주어서 카페에서 고기 꾸러미를 한아름 안아들고 기막히고 즐거워 한참을 웃은 기억이있다.


생일에 받은 고기, 고기, 그리고 고기.


내가 선물 받은 식재료로 시도해본 음식은 다음과 같다.

소세지 토마토 스튜 (오레가노를 듬뿍 넣었다) 쌀국수 (팔각과 정향 레몬 등이 들어간다) 햄스테이크(구워만 먹어도 맛있다) 차예단 (역시 팔각, 정향, 간장  등이 들어간다) 파스트라미와 살라미가 들어간 샌드위치(치즈와 궁합이 좋다) 두반장이 들어간 해물숙주볶음(이건 간조절 실패) 마샬라차이 (팔각, 정향, 연유, 시나몬, 블랙티와 우유를 한데 끓인다) 등이다.

선물로 받은 햄스테이크
오레가노 향이 듬뿍 밴 소세지 토마토스튜
금을 내어 찻물에 끓인 차예단


호기심에 그야말로 이것저것 만들어 본 것인데, 이중 내가 가장 만족한 메뉴는 다름 아닌 마샬라차이 (인도식 밀크티)였다. 나는 우유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유당불내증이 있지만 마샬라 차이는 성질이 따듯한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는데다가 우유를 끓이기 때문에 마시는데 부담이 적고, 겨울에 몸이 따듯하게 풀리는 느낌마저 든다.

일에서 돌아온 저녁, 아빠는 TV를 보고 있었고 엄마는 감기에 걸려 안방에 누워있었다. 나는 양은 냄비를 꺼내들고 차이를 끓이기 시작한다. 때마침 원래 원두를 시켜먹던 사이트에서 사은품으로 시나몬스틱도 받아둔 터였다. 티백에 차와 향신료를 담아 우유가 담긴 냄비에 넣는다. 마침내 우유가 카라멜 빛을 띠며 보글보글 끓으면 불을 끄고 단백질막을 걷어내어 머그잔 세 개에 나누어 따른다.

아빠는 얼마전에 동생이 타준 밀크티 (얼그레이에 우유와 설탕을 넣은 것)과는 맛이 또 다르다며 차를 홀짝이고, 엄마는 예상 외로 (향이 강한 요리 대부분을 싫어하신다) 감기에 좋을 것 같다며 이불에서 빠끔히 나와 차를 마신다. 나야 뭐. 정향과 팔각으로 집에서 시도할 수 있는 손쉬운 요리('요리'라기에는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는 거진 시도해 본 것 같으니, 추운 겨울에는 당분간 마샬라 차이에 정착할 예정이다.

매서운 한파가 당분간 물러가나 싶었는데, 사박사박 눈이내린다. 이번 겨울은 사무치게 춥지만 겨울이기에 돋보이는 소소한 재미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혹시 글을 보고있는 당신도, 마샬라차이 한 잔 어떨까?

* 매거진 <한술, 한모금, 한잠>은 잠시 휴재를 가진뒤 3/7 수요일에 다시 돌아옵니다. 따듯해진 날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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