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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May 03. 2018

[한 모금] 어려운 삼킴

쌓인 것들을 소화하기

문턱을 넘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봄에서 여름의 문턱, 이십대에서 삼십대로의 문턱, 갈래 길에서 다른 길의 문턱으로 나는 계속 궁리하며(그리고 불안해하며)접어들고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갈수록 선택은 녹록치 않은 것 같고 몸을 트는 일은 더더욱 어렵게만 느껴진다. 지속될 것만 같던 찬란하고 짧은 이십대가 지나간다.     

나는 ‘아홉수’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를 ‘재수 옴 붙은 시기’정도로만 생각하던 내게 한 박물관의 관장님은 '아홉 수‘가 사나운 것은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에서 가는 문턱에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시 0의 세계로 돌아가기 이전의 시간,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순환한다는 동양의 사상에서, 아홉수의 산통은 다시금 윤회하듯 제 몸의 생명력을 가꾸기 위함 이라는 그런 말. 아, 그래요? 하고 흘려들었던 그 말이 이제서 위로처럼 와 닿는 것을 보니 나는 제 몸이 아직도 옹송그리고 있다고,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싶나보다.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신중히 움츠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 뜻은 ‘비로소 화합하다’이다. 이름에 조사가 들어가는 것은 (적어도 지인 중에서는) 아직까지 나 외에는 보지 못했는데, 어조사 재(哉)의 뜻을 찾아보면 재난, 화, 비롯하다, 처음 등이 나온다. 이름에 재난이라니, 화라니, 비로소 라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부터 내 이름 뜻은 의뭉스럽게 마음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재난이나 화는 차치하고서라도(할아버지가 내게 그런 뜻을 주었을 거라 믿고 싶지 않으니...)도대체 언제가 그 ‘비로소’라는 건지?      


나는 천성이 질긴 구석이라고는 없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맘 쏟은 모든 일들이 다 피기 직전의 봉오리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싫은 것은 좀체 안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끈질기게 열심히 하지는 못해서 피기 직전인 것 같은 그 상태로 늘 맴도는. (이렇게 써놓고 보니 되게 별로다) 하지만 어떻게든 근근이 끈을 놓지는 않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얕은 위안을 얻는다.      


걸어가는 방식에 대해들은 일이 있다. 나무를 보고 걸어가는 것과 발걸음을 보고 걷는 것. 전자는 발자국은 어지러울지라도 결국은 나무에 도달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눈앞의 곧은 걸음에 신경 쓰느라 결국은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걸음이다. 나는 흔들려도 방향만은 잃지 않고 있는 것인지, 궁심이 필요하다.

      

유난히 벌려놓은 일들이 많은 상반기를 보내고 있다. 버둥거리다 놓치는 것을 주워서 다시 끌어안고 걷고 있다. 아직도 수습해야 할 게 많고, 올봄의 나는 어쩐 일인지 드물게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어지러운 시기의 한 모금들을 나는 잘 삼켜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싶다.  


실컷 ‘아홉수’핑계를 댔지만 변화와 결심의 시작에는 통증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 모금을 신중히 음미하고 먼 곳에 있을 나의 나무를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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