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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ug 24. 2023

나는 네가 참 밉다 하지만 용서해 하지만 북두신권

  감상평을 읽다가 b급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멈추곤 한다. 마성의 단어다. 영화를 보다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한다. 열심과 긍정이 따뜻하게 “괜찮은 거야, 정상적인 거야,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나쁘지 않은 거야.” 말해주지만 결국 좋지도 않은 거야, 대답을 하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 어두운 거리는 어두운 거리고 시집은 시집이다. 게장은 맛있고 손에 묻은 물감은 물속에서 살아나는구나, b급은 불온한 면이 있다. 어울릴 때 가장 신나고 편한 친구다. 내가 불온한 인간인지도.

  휘발성 강한 대사 한 줄이 자꾸 맴도는 편이고 어떤 이유가 있어서 거대 로봇과 거대 문어는 싸워야 했던 걸까,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다.

  사실 아무것도 숨긴 메시지는 없었어, 누가 말해준다 해도 내가 느껴버려서 어쩔 수 없어. 돌이킬 수가 없어. 자꾸 무언가 찾고 싶다. 때로 찾지 않아도 찾아진다. 찾았는데, 너무 흔한 것이어서 그대로 두고 나온다.

  왓챠에서 『북두의 권』이 찾아졌을 때도 그랬다. 찾지 않았는데 왜 나왔니? 원래 거기 있었는데 내가 온 거구나, 너 b급이구나, 누군가에겐 최고였겠구나, 네가 부럽다. 나도 그런 게 있단다.

  뉴클리어 아포칼립스는 왜 그럴까. 사람들이 미칠까. 폭력적일까. 모히칸 스타일과 가죽바지를 고집하게 될까. 왜 누군가 식물의 씨앗을 품에 안고 지평선을 바라볼까.

  망해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네가 가진 것이 많아서 밉고 그래서 죽이는 사람들. 그래서 급을 나누는 게 두렵다. 사실 a급도 b급도 없는 거지, 말해봤지만 사실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북두의 권에도 북두신권이 최고냐 남두성권이 최고냐를 두고 싸우지만 결국 무로써 협을 행하지 않으면 폭력일 뿐.

  전쟁으로 망한 세상에 지상 최강의 암살권 전승자가 몇 명씩 살아있고 그중 하나인 켄시로는 납치당한 연인을 찾아 떠나며 불의에 맞서 싸운다. 대충 적어봤지만 감도 안 오는 시나리오다. 그래서 더 눈이 간다. 암살권의 위력은 무섭다. 건드리면 사지가 절단되고 조금 노력하면 오체분시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선한 사람이 강하다는 건 다행인 일이기도 하지만 힘의 논리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 티를 내 좋아할 수는 없다.

  아무튼 북두신권과 남두성권이 부딪히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고 시작부터 사부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중반쯤 둘이 싸웠는데 아무 일도 없었고… 혹시 사부님이 잘못 아신 걸까… 그런 것치곤 번개가 치는 밤 어두운 방에서 눈을 감고 말씀하셨는데… 사부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궁금증도 미궁에 빠졌다.

  결국 나는 네가 밉지만 용서할게. 인정할게. 근데 엑스트라 분들한테는 그런 기회 안 주셨잖아요. 걔네는 암살권을 모르잖아… 세상에 나쁜 재주는 없다. 어떤 엑스트라는 십 미터를 내던져졌는데도 용감하게 일어나서 제법이군, 말했다. 죽었지만.

  a급 작품이나 b급 작품이나 사랑하고 미워하고 용서하고 싶은 작품은 그렇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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