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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ug 23. 2023

순기능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벽난로는 불에 늘 어떤 얼굴이 어른거린다. 노동자는 저녁에 불을 들여다보며 낮 동안 쌓인 삶의 찌꺼기와 더러운 것들을 마음에서 씻어낸다.” 어쩐지 마음이 깨끗해지는 문장이다. 정말 그런가 하고 마음을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수 근처에서 행한 일련의 실험을 다룬다. 그는 나무판자를 사서 집을 보수하고 열심히 작물을 키운다. 겨울이 오기 전 굴뚝을 세우고 회반죽을 만들어 벽에 바른다. 인간은 자급자족하며 최소한의 거래를 하며 살 수 있는가, 그러니까 그게 가능한가를 알아보러 떠난 것이다. 이런 사람 무섭다.

  책 초반에 영수증이 나온다. 나는 여기까지 읽고 이 영수증이 더 자주 나올 줄 알았다. 나는 그가 열심히 가꾼 농장에서 나온 수확물을 팔아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내가 아직 불에 던져 넣지 못한 희망이다. 이 영수증은 이후로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불을 바라보다가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이 무서운지 아무것도 빼앗기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서운지 잘 모르겠다. 모두가 말없이 앉아 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 불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우리가 점점 다가서기 때문일까. 우리는 최면 효과가 있는 기억을 불에 던지곤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불타는 드럼통에 다 쓴 라카 스프레이 캔을 집어넣었다가 혼났는데, 무슨 효과가 나올지도 모르면서 일단 불에 넣는 건 다 커서도 문제인 것 같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인류의 발전. 모든 생존 관련 다큐멘터리, 생존을 다룬 게임, 믿을 수 없는 생존 실화를 들여다보면 일단 작은 불을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으로 일단 안심한 듯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게 되고 삶이라는 미지의 것을 예감한다. 앞으로 불 앞에서 보내게 될 시간을 가늠하며 끝내 외롭다는 것을 떠올린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선생님, 줄여서 헨데소 선생은 작물을 파먹는 우드척과의 사투를 장엄하게 그리지는 않았다. 그저 그는 여기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했고 생존 이상의 것을 이뤄냈다고 본다. 효모 없이 빵을 만드는 일이 특히 그렇다.

  솔직히 읽는 내내 인류가 이뤄낸 농업 과학의 발전이 우습나요, 헨데소 선생! 외치고 싶었으나 책의 주제와는 거리가 멀어 보여서 그냥 읽었다. 이런 거 하나에 발끈하면 모든 것이 헨데소 선생의 계획대로다.

  마트에 가면 1+1보다 괴로운 쪽이 2+1이다. 전자는 같은 가격대에서 상품 가치만 논하면 되지만 후자는 한 개만 더 사면 하나가 더 따라온다는 함정을 알면서도 지나치기 힘들다. 당장 하나만 필요한 우유를 세 개씩 사게 되는 셈이다.

  내가 가진 물건 대부분은 언제든 버릴 수 있다. 다만 나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불을 보며 마음을 씻어낸 노동자는 다음 노동을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존 그 이상의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간략화와 가속화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도 당분간은 불을 사람들에게 광고해야 했을 것이다. “이거 보세요! 구우면 맛있다니까! 정말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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